그 많던 혜자카드 왜 자취 감췄을까

그 많던 혜자카드 왜 자취 감췄을까

혜택 좋은 카드들, 잇따라 단종
조달비용 상승·삼성페이 유료화 검토…경영 환경 악화
혜자카드 입소문에 급증한 ‘체리피커’로도 골머리

기사승인 2023-06-18 06:00:11
연합뉴스
“소비자에겐 역작, 카드사에게는…”

소비자들에게 많은 혜택을 제공해 이른바 ‘혜자카드’로 불렸던 상품들이 잇따라 자취를 감추고 있다. 혜자카드는 배우 김혜자를 모델로 내세운 한 편의점 도시락이 가격에 비해 푸짐했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혜택이 많은 신용카드를 뜻한다. 갈수록 악화하는 업황에 적자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고육지책으로 내린 결정이라는 게 카드사 설명이다. 

KB국민카드는 ‘KB국민 탄탄대로 올쇼핑카드’ 등 10종 카드가 16일부터 발급 종료된다고 밝혔다. 연회비 대비 높은 혜택을 제공하는 카드가 다수 포함됐다. 현대카드 ‘제로 모바일 에디션2(ZERO Mobile Edition2)’ 포인트형·할인형 2종도 지난달 31일을 기점으로 단종됐다. 해당 카드는 결제금액의 1.5%를 할인해 주거나 2.5%를 포인트로 적립해 주는 등 혜택으로 인기를 끌었다. 지난 4월에는 롯데카드가 인터파크 맞춤형 할인 카드인 ‘인터파크 롯데카드’와 롯데홈쇼핑 전 채널에서 할인 및 적립 혜택을 제공하는 ‘롯데홈쇼핑 벨리곰카드’ 등 2종의 카드 발급을 중단했다.

애플의 근거리무선통신(NFC) 결제 서비스 '애플페이' 국내 서비스가 시작된 3월21일 서울 시내의 한 카페에 애플페이 사용 가능 안내 스티커가 붙어져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1분기 실적 이미 안 좋은데…하반기 전망도 어두워

카드사들이 혜택이 좋은 상품을 잇따라 단종하는 이유는 카드업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금리 기조에 조달 비용이 늘어나는 등 여러 악조건이 겹쳤다. 카드사들은 상반기 악화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2023년 1분기 전업 신용카드사 합산 당기순이익은 572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4% 감소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카드 이용실적은 증가했지만 이자 비용 및 대손비용 증가폭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나이스신용평가(이하 나신평)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시중금리 상승으로 이자 비용률이 상승하고 과도한 가계부채 규모 및 부동산시장 침체 등으로 대손 비용률이 상승하면서 수익성 하락압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반기 전망 역시 밝지 않다. 나신평은 올해 하반기 특히 다중채무자를 중심으로 금융업권 간 위험의 전이 가능성이 높아 취약차주 익스포져(대출·보증 부실)가 높은 금융업권을 필두로 자산건전성 저하세가 심화될 수 있다고도 짚었다.

삼성페이 유료화 이슈까지 불거졌다. 지난 2015년 8월 삼성페이 출시 후 해마다 카드사와 계약을 자동연장해 온 삼성전자는 올해 처음 유료화를 시사했다. 지난 3월 현대카드가 애플페이 서비스를 처음으로 개시했는데, 현대카드가 애플페이에 결제 건당 0.15%의 사용 수수료를 내는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삼성페이 무료 사용 기조를 이어가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지만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뛰는 카드사 위에 나는 소비자들…“우리도 이럴 줄 몰랐어요”

혜자카드가 인기를 끌수록 ‘체리피커(Cherry picker·자신이 필요한 기능이나 혜택을 누리고 매출에는 별로 기여하지 않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적자 폭이 커지면 카드사 입장에서는 단종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일례로 지난 2020년 11월 출시된 신한카드 ‘신한 The More(더모아)카드’는 결제 금액 중 1000원 미만 잔돈을 포인트로 적립해줘 큰 인기를 끌었다. 일부러 금액을 5999원씩 끊어서 결제해 999원씩 포인트를 여러 번 적립하는 방식은 이미 유명하다. 2021년 12월31일 단종됐지만 파킹률(이용액 대비 혜택 비율)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소비자 사이에서 아직까지 공유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신한카드의 실수’, ‘기획자가 잘렸다는 전설의 혜자카드’로도 온라인상에서 회자된다.

A사 관계자는 “혜자카드는 신규 회원 증대 및 매출 증가로 이어질 수 있지만, 실속만 차리고 떠나는 체리피커가 과대 양산되면 카드사가 부담하는 비용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일부 소수의 고객이 포인트 적립 제한이 없는 카드를 기업용으로 수 천만원씩 결제하는 등 악용하는 경우가 있다”며 “처음에 설계한 혜택을 갑자기 바꿀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이 단종시킬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B사 관계자는 “카드 단종에는 제휴사와의 계약이 끝났다든지, 고객 사용 트랜드에 발맞춰 출시한 상품이었는데 소비 트랜드가 바뀌면 단종시키고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는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카드사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요즘이 어느 시대인데 기획한 상품이 적자 냈다고 잘리겠느냐”며 “카드 상품은 한 사람이 기획하는 게 아니다. 회사 차원에서 많은 사람이 의사결정에 참여해 내놓는다. 당연히 여러 경우의 수를 검토하고 손익도 계산한 뒤 출시했지만 예상치 않은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만큼 소비자분들이 혜택 좋은 카드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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