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리오프닝(경제 재개) 수혜를 간망하던 대형 화장품주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들 주가는 중국의 상반기 최대 쇼핑 행사를 앞둠에도 불구하고 하향 곡선을 그린다. 특히 한국과 중국의 외교 마찰로 ‘한한령 재개’라는 리스크까지 떠안았다. 반면 중소형 화장품사는 상승세다. 대형사 대비 중국 의존도가 낮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선 화장품 중소형주에 대한 선호 의견을 내놓으면서도 대형주의 하반기 기대감을 내비쳤다.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연초 종가(13만5000원) 대비 22% 감소한 10만4900원에 장을 마감했다. 같은 기준 LG생활건강도 29% 하락한 51만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0월28일 기록한 종가 기준 52주 최저가인 50만4000원에 비하면 1.2% 차이에 불과하다. 통상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화장품 ‘대장주’로 분류된다.
결론적으로 대형 화장품주들의 주가 악화가 끊이지 않는 점은 중국 영향이다. 이들은 올해 초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폐지에 따라 중국 소비시장 활성화로 인한 리오프닝 효과를 기대했다.
그러나 중국 내수시장 활성화가 고착됐던 점과 저조한 중국 경기의 흐름 영향이 기대를 되돌렸다. 중국 제조업 부문 경제 활동에 대한 지표인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는 지난 4월 49.2에서 5월 48.8로 2개월 연속 하락했다. 시장 예상치를 하회한 수준이다.
이영원 흥국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며 “예상보다 빨리 봉쇄 해제를 단행한 이후 연초부터 기대가 높게 형성됐지만, 내수 등 일부 제한적인 범위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관찰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영향으로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실적에 타격을 입었다. 우선 아모레퍼시픽은 올해 1분기 매출액 9137억원, 영업이익 64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로 각각 22%, 59% 급감했다. 중국 매출이 45% 하락하면서 실적 부진을 야기했다.
LG생활건강은 1분기 매출액 1조6837억원, 영업이익 1459억원을 냈다고 공시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2.4% 늘었지만 같은 기준 영업이익은 16.9% 줄었다. 뷰티사업 부문의 1분기 영업이익은 11.3% 감소한 612억원을 기록했다. 사측은 중국 매출의 두 자릿수 감소세가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양 사의 최근 주가는 중국의 상반기 최대 쇼핑 행사인‘'6.18 쇼핑축제’를 앞뒀음에도 고전 중이다.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이달 들어 보합세에 머물렀다. LG생활건강은 오히려 3% 하락했다.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재개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 원인이다. 지난달 중국에서는 네이버 접속 장애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 연예인의 현지 예능 프로그램 출연도 돌연 취소됐다.
특히 한국과 중국 간 외교 마찰에 따른 갈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8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남에서 “중국의 패배에 배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고 발언하면서 한국 정부의 외교 정책을 비판했다. 이에 다음날 정부는 싱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중국 정부도 정재호 주중대사를 불러 불만을 표하는 등 맞조치에 나섰다.
대형 화장품주들이 고심하는 가운데 중소형주들은 오히려 성장 곡선을 선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중소형 브랜드의 경우 낮은 중국 의존도로 해당 시장 매출 없이 호실적을 기록했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분석이다. 특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가 유의미한 상승폭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코스메카코리아와 클리오, 씨앤씨인터내셔널이 꼽힌다. 이들 중소형사의 주가는 연초 대비 각각 90%, 39%, 64% 급등했다. 코스피 지수 상승률인 17%를 훨씬 웃도는 흐름이다.
박현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H&B 채널 위주로 사업을 전개하는 중소 화장품 브랜드사 또는 이들을 생산하는 ODM·OEM 사들의 실적 회복세가 강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OEM 사의 경우 국내와 일본 수요가 견조해 국내법인 실적이 전사 성장을 견인하는 구조가 올해도 이어져 당장은 대형 브랜드사보다 OEM 사가 매력이 높다고 판단하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는 대형 화장품주들의 하반기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모델 이원화 전략과 리브랜딩 효과 등이 향후 실적으로 반영될 것이란 분석이다. 단기 주가 반등 가능성은 제한적이나, 관심을 둘 필요는 있다는 평가다.
한유정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LG생활건강은)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진행하고, 지난 12일 뷰티 대표 브랜드 ‘The History of Whoo’의 신규 라인 ‘로얄 레지나’를 선보이면서 모델 이원화 전략을 택하는 등 개선을 위한 변화가 점차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아모레퍼시픽은 설화수의 글로벌 엠버서더로 가수 블랭핑크 멤버 로제를 내세워 이미지 쇄신에 나서고 있다”며 “노후화된 이미지를 변화시키기 위한 마케팅으로써 글로벌 뷰티 시장에서 새롭게 달라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 연구원은 “이니스프리의 경우 북미와 동남아에서 매출을 점진적으로 키우고 있다”며 “주요 브랜드들의 리뉴얼, 리빌딩과 관련한 성과가 하반기부터 미약하게나마 보여질 것이다”고 예상했다.
이창희 기자 windo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