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돈으로 ‘토막살해’ 기록 못 지워” 프랑스서 쏟아진 성토

“사우디, 돈으로 ‘토막살해’ 기록 못 지워” 프랑스서 쏟아진 성토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언론인 살해 배후·예멘 내전 개입
프랑스 언론, 일제히 마크롱-빈 살만 회동 비판
尹, 파리서 엑스포 유치 걸고 빈 살만과 승부전…4차 PT서 영어 연설로 승부수

기사승인 2023-06-20 13:38:32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 19일(현지시간) 사우디 제다에서 열린 아랍연맹 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 언론이 일제히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간 회동을 강하게 비판했다. 사우디가 자행한 반정부 언론인 토막 살해 사건 등 인권탄압 사례를 거론하며 빈 살만 왕세자를 ‘대재앙’ 이라고 혹평했다.

프랑스를 방문한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엘리제궁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오찬하며 환담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2030세계엑스포 개최지로 사우디 리야드를 밀어준 프랑스에게 변함없는 지지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국제 사회에서는 2030세계엑스포 개최 후보국에서 사우디를 제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사우디의 지속적인 사형 집행 △여성 인권 옹호자들에 대한 침묵 △해외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표적 수사 등 무자비한 인권 탄압이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특히 엑스포 유치 활동에 뛰어든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2018년 터키에서 피살된 반체제 언론인 자말 까슈끄지 암살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문제의 인물’이다. 까슈끄지는 미국 워싱턴 포스터 등에서 사우디 왕실을 비판했던 미국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로,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가 사우디 정부가 보낸 암살팀에 토막 살해됐다. 당시 미국 정보 당국도 사우디 실세인 빈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암살을 직접 지시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빈 살만 왕세자는 세계적 기피 인물로 떠올랐다.

빈 살만 왕세자는 예멘 내전에도 깊이 관여해왔다. 예멘 내전은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의 여파로 인한 정치적 불안 속에 후티가 예멘 정부를 2014년 수도 사나에서 몰아내며 시작됐다. 사우디는 후티가 예멘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막기 위해 2015년부터 예멘 내전에 군사적으로 개입해왔다. 

프랑스 최대 지역 일간지 우에스트 프랑스(Ouest France) 기사 캡처. 

프랑스 언론은 일제히 빈 살만 왕세자의 무자비한 탄압을 거론하며, 마크롱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의 회동을 규탄했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16일(현지시간)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시험에 든 정치적 현실주의’라는 제목 아래 실은 온라인 기사에서 “빈 살만 왕세자를 단순히 논란의 인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소평가”라며 “사우디는 오일머니 파워로 이미지를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파라오식 개발 프로젝트만으로 한 국가인 예멘을 파괴하고,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토막 살해한 사건, 수없이 많은 사형을 집행하는 권위주의적 국가라는 역사 기록은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르몽드는 “자유주의와 인권 수호를 기치로 내세운 국가들은 사우디와 위선적인 방식으로 경쟁해왔으나, 외교적으로 멀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사우디와의 관계를 증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사우디의 부정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자원을 바탕으로 한 막대한 재정적 영향력과 중동 지정학 리스크 때문에 사우디가 ‘정치적 면죄부’를 받았다는 평가다.

지방 언론도 한목소리를 냈다. 프랑스 최대 지역 일간지 ‘우에스트 프랑스’는 18일 ‘사우디 아라비아, 재앙적 신호’라는 사설을 통해 빈 살만 정권의 무자비한 행보를 비판했다. 2022년 사우디의 사형 집행 건수가 총 196건으로 전년대비 세 배나 증가했다는 국제 앰네스티의 통계와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살해 사건을 예시로 들면서다. 이번 엘리제궁 오찬이 심각한 논쟁을 제기한다고도 지적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2015년 예맨 전쟁을 일으킨 전범 국가인 사우디 왕세자를 환영하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평했다. 폭정을 일삼는 사우디와의 관계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은 프랑스의 국가적 가치보다 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재앙적인 신호를 보낼 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는 독재자를 환대하고, 전범들과 무역한다’는 러시아 선전 활동에 힘을 실어주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프랑스 정부가 ‘현실주의’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대외적으로 위험한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다고 진단하며, 이에 맞서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정치고문인 야신 아크타이가 15일(현지시간) 주이스탄불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피살당한 지 40일째 되는 날을 추모하기 위해 열린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18.11.15AP 연합뉴스

우에스트 프랑스는 같은 날 ‘마크롱의 MBS 초대가 논란이 되는 이유’라는 제목을 통해 “수많은 비정부기구 및 좌파 성향의 정치인들이 마크롱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의 두 번째 만남을 두고 비판적인 의견을 내비쳤다”라는 기사도 보도했다. 

우에스트 프랑스에 따르면,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 프랑스 지부 총지도자 베네딕트 잔느로드는 반체제 언론인 살인, 사우디 권력층의 탄압, 예멘에서 벌어지는 전쟁 범죄 등 다양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빈 살만 왕세자가 국제무대에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마크롱 대통령을 이용한다며 작년 양국 회담부터 비판해왔다. 

국제엠네스티 기관 사무국장 아니에스 칼라마르는 (프랑스가) 자격이 없는 사람의 권위를 회복시켜주고 있다며 프랑스앵포 인터뷰에서 개탄했으며, 휴먼 라이츠 워치 중동지부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인 아메드 벤쳄시는 반체제 언론인의 암살에 대한 책임이 명백한 지도자의 손을 잡는 것이 유감스럽다고 AFP 통신에 밝히는 등 비판 보도가 이어졌다. 

프랑스 사회주의의 대부 장 조레스(Jean Jaures)가 설립한 일간지 좌파 신문 ‘위마니떼(Humanite)’는 15일(현지시간) ‘무함마드 빈 살만 프랑스 방문 : 프랑스 대통령이 빈 살만 왕세자 명예 회복의 중심역할을 했다'는 것에 국제 앰네스티가 한탄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위마니떼에 따르면, 국제 엠네스티 및 인권기구 휴먼 라이츠 워치는 사우디 왕세자 빈 살만 방문에 대한 프랑스 정부 환대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빈 살만은 파리 에이쇼 계기 사우디아라비아 항공 프로모션, 2030 리야드 세계박람회 유치 등을 위한 프랑스 일정을 계획했다. 유럽 사우디인권기구 (ESOHR), 사형집행 반대 구호기구 Reprieve, 국제 엠네스티는 빈 살만 왕세자 집권 이후 사형집행 건이 매년 두 배씩 증가했음을 시사하며 엘리제궁의 입장을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장인 파트릭 슈페히트 BIE 행정예산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사우디가 국제사회에서 쏟아지는 ‘인권 탄압’ 우려를 넘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엑스포 개최지는 오는 11월 말 BIE 정기총회에서 171개 회원국의 투표로 결정된다. 이달 20~2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제172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가 사실상 지지국가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회 개최지인 프랑스에서 이같은 비판 보도가 나왔다는 것은 사우디에게 적신호다.

앞서 한국은 지난 3차 PT에서 엑스포 유치에 대한 성공적 기류에 안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경험 없는 사우디의 일시적인 자본투자를 받기보다는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의 경험과 노하우, 축적된 기술을 갖고 있는 한국을 선호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국제여론이 한국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윤 대통령도 BIE 총회에 참석한다. 윤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이번 4차 PT의 마지막 주자로 나서 영어 연설로 한국의 엑스포 유치 열기와 한국만이 가능한 엑스포 비전을 전달할 예정이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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