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올해 중 100만 관객을 넘긴 한국영화 편수다. 지난 1월 개봉한 영화 ‘교섭’(감독 임순례)은 손익분기점을 넘기지는 못했으나, 총 관객수 172만111명을 기록하며 한국영화 중 유일하게 체면치레를 했다. 영화 ‘드림’(감독 이병헌) 역시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채 총 관객 112만5691명을 모았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범죄도시3’(감독 이상용)는 21일 기준 누적 관객 907만7649명을 동원해 1000만 고지를 넘보고 있다. ‘교섭’과 ‘드림’을 제외한 일반 영화는 100만 관객에도 미치지 못한 채 흥행 참패를 이어가는 반면 시리즈 팬을 보유한 작품은 매서운 기세를 보이고 있다.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한국영화의 현주소다.
안갯속을 걷는 한국영화가 관객 수 조작 의혹이라는 새로운 암초를 만났다. 의혹은 지난 13일 경찰이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영화관 3곳과 롯데엔터테인먼트·쇼박스·키다리이엔티 등 배급사 3곳을 압수수색하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입장권 발권 기록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입력 자료 등을 확보해 이들 회사가 관객수를 부풀렸는지를 살피고 있다.
‘비상선언’ 發 의혹에… ‘그대가 조국’도 불똥
이번 논란은 지난해 여름 개봉한 영화 ‘비상선언’(감독 한재림)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봉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영화 평점을 의도적으로 낮추고 고의로 악평을 남기는 이른바 ‘댓글 부대’가 존재한다는 의혹이 일어서다. 이와 관련해 영화계에 역바이럴(경쟁사 제품 및 콘텐츠에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행동)이 성행한다는 이야기까지 더해져 논란이 커졌다. 당시 ‘비상선언’ 투자배급사 쇼박스는 역바이럴 정황을 포착했다며 수사기관에 조사를 의뢰했으나, 바이럴 마케팅을 진행한 전적으로 인해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더불어 영화표를 새벽 시간에 몰래 사들였다는 사재기 의혹까지 있었다.
영화계에 따르면 현재 경찰은 쇼박스가 배급한 ‘비상선언’을 비롯해 키다리스튜디오의 ‘뜨거운 피’(감독 천명관)·‘비와 당신의 이야기’(감독 조진모)와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사극 등 4편의 관객 수가 조작됐다는 단서를 확보해 증거를 수집 중이다. 경찰은 이들 작품 외에도 관객 수를 부풀린 영화가 10편 이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임명과 검찰 수사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그대가 조국’(감독 이승준)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관객 호응 여부와 관계 없이 무작정 조작으로 보는 경찰의 조사 방식을 우려하고 있다. 팬덤형 영화는 관객이 직접 보러가지 못 해도 좌석을 구매해 작품을 향한 애정과 지지를 보내는 이른바 ‘영혼 보내기’가 관람 방식 중 하나로 꼽힌다. ‘그대가 조국’ 역시 후원자들에게 좌석 후원을 받은 작품이다. 배급사 엣나인필름 정상진 대표는 논란이 불거지자 SNS에 “상영관 확보를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면서 “후원인을 위한 시사 상영의 경우 사석은 배급사에서 지불했으며, 행사 진행 시 추가 시간 대관료는 영화관에 티켓 발권을 받아 지불했다”고 해명했다.
휘청이는 한국영화… 반감 커질까 우려
문제는 이 같은 논란이 한국영화에 실망감이 커진 요즘 관객에게 악수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코로나19가 성행하며 극장을 찾는 대신 OTT 플랫폼을 택하는 이들이 늘어난 데다, 최근 수차례 인상을 거친 티켓값을 두고 대중 사이 반감이 커졌다. 이는 한국영화 소비 침체로 이어졌다. 지난 12일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5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영화를 관람한 총 관객수는 전체 관람인원(1175만명)의 19.5%인 229만명에 불과했다. 매출액은 216억원(점유율 18.2%)에 그쳤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2020~2022년)을 제외하고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영화를 향한 신뢰도에 흠집이 나는 건 다소 치명적이다. 정경재 롯데컬처웍스 콘텐츠사업본부장은 지난달 웹진 ‘한국영화’와 나눈 대담에서 “과거에는 돈을 벌 수 있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를 제작사나 배급사가 선택하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관객 스스로 영화관에서 볼 영화와 OTT에서 볼 영화를 구분하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 관계자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티켓값을 향한 반감이 각각의 작품을 향한 부정적 평가로 이어지는 분위기가 있는 듯하다”며 “(관객 수 조작 의혹과 관련해) 좋지 않은 이슈가 더해지는 게 우려스럽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국영화, 다양성 찾아야” 전문가 의견 들어보니
한국영화의 앞날은 어떻게 흘러가야 할까. 전문가들은 다양성을 되찾는 것에 주목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흥행 척도를 관객 수가 아닌 매출액 기준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미국·영국·독일·일본 등이 매출액을 기준으로 영화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관객 수로 영화를 줄 세운다. 초기 관객 수를 영화의 주요 홍보 수단으로 사용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개봉 전 유료 시사회를 개최하는 변칙상영으로 관객 수를 미리 모으는 영화도 생겨났다.
김 평론가는 “소수의 대형자본 영화만 걸려 있는 현재 멀티플렉스 체제 하에서는 정체기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객 수를 중심으로 하는 구조 특성상, 거대 제작비를 투입한 대형 영화가 큰 예산으로 초기 관객 수를 부풀려 상영관을 확보하고 스크린을 독식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어서다. 그는 “손익분기점과 매출액 중심으로 영화를 판가름하면 블록버스터가 아닌 중소영화가 살아나고, 관객의 선택지 역시 확대된다”고 강조했다. 정경재 본부장 역시 앞선 대담에서 “다양성이라는 기준점을 잃지 않아야 한국영화계와 창작자 모두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