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밖 출산’ 그들은 왜 비정한 부모가 됐을까

‘병원 밖 출산’ 그들은 왜 비정한 부모가 됐을까

“보호출산제, 최후 수단 돼야”
위기 임신부·미혼모·아동 초기 지원 필요

기사승인 2023-06-28 06:05:02
쿠키뉴스 자료사진

# A씨는 결혼 전 임신 사실을 알고 당황했다. 남자친구는 아이를 원치 않았다. 주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미혼모 시설을 찾은 A씨는 함께 지내던 10대, 20대 친구들이 출산하는 모습을 봤다. 일부는 시설에서 아이를 키웠고, 일부는 입양을 보냈다.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과 달리, 입양 보낸 친구들은 죄책감에 눈물로 하루를 보냈다. 임신 9개월차 A씨는 입양 대신 양육을 결심했다. 형편은 좋지 않았다. 아이와 머물 방 한 칸 빌릴 돈도 없었다. 출산 후 미혼모 시설에서 6개월, 중간의 집과 모자원 등에서 4년을 보냈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 이야기다. 김 대표에 따르면 미혼모 상당수는 임신 사실을 알면 두려운 마음에 병원을 찾지 않는다.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 시선과 원치 않는 임신,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불안감, 경제적 부담감 등은 그들을 제도권에서 멀어지게 한다. 정보도, 경험도 없으니 도움을 받기 힘들다. 김 대표는 “아이와 둘이 살면서 서로 의지가 됐다”라며 “초기에 엄마에게 조금만 지원이 잘 이뤄진다면 아이를 포기하겠단 생각이 사라지지 않을까”라고 했다.

신생아 발.   사진=임지혜 기자

2236명. 지난 2015년 이후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사라진 영·유아’ 숫자다. 이들에겐 출생 직후 예방접종을 위해 신생아에게 부여한 임시 신생아 번호만 있다. 지난 21일 보도된 냉장고 영아 살해 사건을 계기로 재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국회에선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입법에 속도가 붙고 있다. 동시에 보호출산제 논의에 앞서 임신부, 특히 미혼모와 아동을 위한 지원 체계와 사회적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정치권은 영유아 범죄를 막고자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병원에서 태어난 아동의 출생 사실을 의료기관이 지방자치단체에 알리도록 의무화하는 출생통보제에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모였다. 하지만 신원 노출을 꺼리는 이들의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 보완책으로 논의되는 것이 보호출산제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020년 12월 발의한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 법안’을 보면 신원을 노출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자 하는 임신부는 보건소나 의료기관에서 상담받은 뒤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다. 자녀가 친생 부모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려면 친생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도록 했다.

일각에선 보호출산제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지만, 아이가 부모 정보를 찾기 어려운 점이 문제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도 아동의 부모를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호출산제는 최후 수단으로 고려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박영의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 선임매니저는 “보호출산제를 도입한 독일, 프랑스 국가들에서도 아이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이어 “통계를 보면 독일에서 익명(보호)출산제를 도입한 이후에도 유기 아동이 감소하지 않았다”라며 “실효적인 측면에서도 보호출산제 도입이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도 “엄마와 아이를 분리하는 법안”이라며 “(보호출산제) 순간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겠지만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21년 12월19일 영아가 숨진 채 발견된 경기도 오산시의 한 의류수거함에 추모 메시지와 물품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일부 전문가들은 보호출산제 논의에 앞서 위기 임신부에 대한 정보 제공과 지원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끊임없이 일어나는 영아 살해·유기 사건은 여전히 열악한 미혼모의 현실을 가늠하게 한다. 쿠키뉴스가 대법원 판결문 열람시스템을 통해 최근 2년간 분만 후 영아 살해 사건 하급심(1·2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공개된 11건 중 7건이 결혼하지 않고 출산한 미혼모였다. 가해자 가운데 병원에서 출산한 사례는 없었다. 주거지 화장실이나 건물 화장실 등에서 출산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사회는 미혼 부모가 아이를 홀로 낳아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아닌, 타인에게 입양을 보낼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갓 태어난 생명을 앗아가는 영아 살해·유기 사건은 끊이지 않을 것이란 우려다.

현재는 엄마와 아이가 분리되면 혜택을 준다. 미혼모 등 한부모가족 양육비 지원금은 기준중위소득 60% 이하 기준 만 18세 미만 아동 1인당 월 20만원, 청소년 한부모가족은 기준중위소득 65% 이하 가구의 경우 아동 1인당 원 35만원이다. 연간으로 따지면 240만원(한부모 양육보조금 기준) 규모다. 반면 가정위탁 양육보조금은 아동 1인당 월 30만원~50만원이다. 연간으로 최대 600만원이다. 입양가정은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월 20만원, 여기에 입양시설에서 입양이 성사되면 기관에 입양 알선 수수료가 270만원까지 지급된다.

엄마와 아이를 분리하는 것이 더 혜택을 많이 받는 시스템이 부모가 아이를 포기하게 하는 환경이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대표는 “미혼모는 경제적으로 자립이 돼 있는 상황이 아닌 경우가 대다수”라며 “아이를 입양기관 등에 보내면 정부에서 돌봄 지원 비용을 기관에 준다, 엄마가 키우면 그런 지원이 없다”고 했다. 이어 “생후 36개월까지는 아이가 정말 많이 아프다.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에서 병원비는 큰 걱정”이라며 “입양된 아이는 18세까지 의료급여 1종이다. 병원비 걱정이 덜 해지니 돈 때문에 아이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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