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력이 부족해서 진료과를 넘나들며 부서가 이동되니 출근 전 동료들과 ‘주사기 위치도 모르는데 어떻게 환자를 보냐’며 걱정하는 상황이다. 환자 이름과 수액 팩에 붙은 바코드를 수십 번씩 확인한다. ‘이러다 내가 환자를 죽일 것 같다’는 불안감에 육체적·정신적으로도 고통을 받고 있다.”
수도권 공공병원에서 일하는 신규간호사 A씨가 3일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열린 ‘보건·의료인력 부족이 환자 안전에 미치는 영향 증언대회’에 참석해 이같이 털어놨다.
이 자리에서 전현직 간호사와 물리치료사들은 만성적인 의료인력 부족 탓에 충분한 교육을 받을 시간도 없이 업무에 배치되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의료인력 부족이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병원 간호사 B씨는 “전신화상 환자가 화상전문병원으로 이송됐지만 호흡기내과 전문의가 없어서 제가 일하는 병원으로 재이송됐다. 그러나 결국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했다”면서 “만일 화상전문병원에 호흡기내과 전문의가 있었다면 그 환자는 안전하게 치료받고 일상으로 복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공공병원 물리치료사 C씨도 “물리치료사가 부족해서 재활치료 환자가 혼자 이동하다가 낙상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근육마비로 균형 능력이 떨어진 환자가 낙상을 입으면 심각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환자가 안전하게 진료를 받기 위해선 환자당 최소 간호인력 배치 기준을 지킬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장숙랑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 학장은 “미국은 ‘간호인력최소배치기준법’으로 최소한의 배치기준을 법적으로 강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법 시행규칙상 간호사 1명 당 환자 2.5명을 배치해야 하지만 유명무실하다”면서 “법령을 정비하고 환자가 안전한 인력배치가 가능하도록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도 “반복된 의료현장의 환자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사인력 확충과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5, 직종별 인력기준 마련, 업무범위 명확화가 필요하다”며 보건의료인력 국가책임제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달 147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직종별 적정인력 기준 마련과 보건의료 인력 확충 등을 요구하며 노동쟁의조정을 신청했다. 이들은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오는 13일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