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가는 건 당연한 권리인데 (장애) 아이들은 배제된 것 같아요. 아이들이 집에서도 가까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힘써주세요.”
경기도에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학교(맹학교)가 없어 학부모들의 원성이 높다. 전국에서 시각장애인이 가장 많은 지역이지만, 맹학교는 하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도내 맹학교 개교를 위한 TF팀을 만들어 오는 2026년 3월 개교를 목표로 설립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7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에서 열린 ‘경기도형 시각장애 특수학교(맹학교) 설립을 위한 토론회’에서 장애 자녀를 둔 학부모, 특수학교 교사, 전문가 등이 모여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문 특수학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경기도에는 32곳의 특수학교가 있지만 맹학교는 한 곳도 없다. 시각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고운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특수학교 아름학교는 특수학교지만, 발달장애와 시각장애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는 곳이다. 206명의 재학생 중 시각장애 학생은 28명에 불과하다. 시각장애인은 전문적인 맹교육이 필요해 맹학교와 기숙사가 있는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시각장애 학생들이 발달장애 학생과 같은 장소에서 함께 전문적인 교육을 받긴 어렵다. 유선주 아름학교 학부모회장은 “아름학교에 시각 과정이 있지만, 발달장애 학생들과 함께 있어 온전히 시각장애 교육이 이뤄지기 어렵다”며 “전문적인 시각장애 교육을 따라가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발달장애 자녀를 키운다는 유 회장은 “장애 유형은 너무 다르다. 발달장애는 ‘도전적 행동’(돌발행동)을 보이는데 이러한 행동은 시각장애 학생들에겐 너무나 위험하다. 시각적 능력이 제한돼 자기방어에 취약하므로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유 회장에 따르면 맹학교에는 운동장 소음을 발생하거나 교실 내 사물 위치를 같게 하는 등 시각장애 학생들이 방향이나 위치 파악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 발달장애 학생들은 청각에 예민한 경우가 많아 아름학교 등과 같은 특수학교에선 이같은 방법으로 교육하기 어렵다. 경기도내 시각장애 학생 중엔 다른 지역 맹학교가 멀어 일반 학교에 진학한 학생도 있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맹학교의 폐쇄적인 성격이 졸업 후 학생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적응을 힘들게 한다는 지적이다. 15년간 서울의 한 맹학교를 다녔다는 시각장애인 A씨는 “특수학교(맹학교)가 단순히 시각장애인들을 잘 교육하는 학교가 아니라, 비장애인과 통합하는 허브로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며 “폐쇄적인 탓에 졸업 후 사회에 나갔을 때 비장애인들과 어울리며 살아가기 힘들었다. 단순히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외부적 상호작용도 함께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B씨는 “폐쇄적이었던 맹학교를 다니다 대학에 들어가니 사람들과 소통이 힘들었다”고 는 말했다. 그는 “단독 맹학교보다 통합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맹학교를 졸업해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비장애인들과 공존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시각장애가 있는 이고은 교사는 “맹학교를 졸업한 선생님들의 능력이 특히 뛰어나다. 그만큼 시각장애인에겐 전문적 교육이 필요하다”라며 “(맹학교가 폐쇄적이지 않도록) 학교는 일반 학교 옆이나 걸어서 마트, 지하철도 이용할 수 있는 곳에 세워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사회가 통합되는 위치에 맹학교가 들어가서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안마센터 등을 만들어 실습하고 소통하는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학생이 사회에 나가서 (비장애인들과 어울리는) 준비하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통합돼 전문 교육을 받는 체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재용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의원은 “장애인들이 사회에 적응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너무 많다”며 “장애 유형별 특성이 있어 전문성 있는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단독 맹학교 설립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빠르게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맹학교 설립을 위한 예산 등 행정 문제를 논의하는 TF팀을 구성해 오는 2026년 3월 도내 단독 맹학교 개교를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교육청은 단독 맹학교 설립에는 공감하면서도 2026년 개교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정일영 학교설립기획과 의무교육배치 사무관은 “내년 상반기에 설계 착수가 이뤄질 수 있게 준비하고 있다”며 “다만 신설 학교를 정하는 적정 기간은 35개월로 정해져 있다. 아무리 빨리 개교해도 2027년 3월까진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각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도내 전체 시각장애인 학생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해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규모가 정해지면 접근이 용이한 학교 위치를 정하고, 이와 함께 해당 지자체와 학생들과 주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시설이 될 수 있도록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장애 학생들이 교육권을 침해받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호소도 나왔다. 유 회장은 “장애가 있어도 자녀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라며 “아이에게 장애를 줬다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된 기분”이라며 울먹였다. 그는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했지만, 아직도 학교 때문에 마음을 졸이고 속 썩여야 하는 게 현실이다. 더 많은 장애 학생들이 비장애 학생들과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