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종로 서촌, 소환사의 협곡에서 자웅을 겨루던 이용자들이 ‘티모’ 원정대장을 따라 ‘티모 문화유산 원정대’를 꾸렸다. 약 20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이날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세종마을의 문화유산을 탐방하고 미식 체험을 즐겼다.
라이엇 게임즈는 ‘플레이어 중심’ 철학을 바탕으로 지난 2011년 한국 시장 진출 시기부터 사회공헌활동을 계획했다. 이들은 게임이라는 놀이 문화를 제작하는 기업으로서, 우리 문화의 뿌리인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호하며 관심을 환기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결정했다. 그렇게 2012년부터 시작된 기부는 2022년엔 누적 76억7000만원에 이르렀다.
지난 2014년부터 이어온 국외문화재환수 사업은 ‘석가삼존도’, ‘문조비 신정왕후 왕세자빈책봉 죽책’, ‘척암선생문집 책판’, ‘백자이동궁명사각호’, ‘중화궁인’, ‘조선왕실유물 보록’ 등의 문화재를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했다. ‘이상의 집’을 리뉴얼하고 재개관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이외 유물 보존처리, 학술연구 지원, 3D 정밀 측량, 인적 자원 후원 등도 실시했다.
티모 문화유산 원정대는 이러한 사회공헌활동의 일부로, 청소년과 게임 이용자 역사 교육 지원이 목표다. 앞서 역사 교육 프로그램은 2019년까지 ‘소환사 문화재지킴이 탐방’이라는 이름으로 누적 129회 진행된 바 있다.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된 뒤 지난 3월 들어 월 2회로 증편, 미식 탐방과 타악 공연 등 체험 요소를 강화해 재개됐다. 올해는 총 16회에 걸쳐 약 400명이 참가할 수 있는 규모로 기획됐다.
앞서 진행된 홀수 회차의 티모 문화유산 원정대는 ‘낙산 타악 공연과 체험’을 즐겼다. 이어 흥인지문에서 낙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걸었다. 소극장 ‘무극’에서 진행된 ‘화려’의 타악 공연을 감상하고 악기 연주법을 배워 아티스트 ‘K/DA’의 ‘POP/STARS’를 직접 연주하기도 했다.
8회차인 이번 티모 문화유산 원정대는 ‘서촌 미식 탐방 체험’에 나섰다. 이른 오후의 경복궁역 3번 출구, ‘문화희망 우인’의 전문 교육진이 귀여운 티모 모자를 쓴 채 원정대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장 스태프는 원정대 전원에게 무전 송수신기와 이어폰을 지급해 먼 거리에서도 교육진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아무리 관심이 있어도 역사 공부는 근본적으로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교육진은 서촌에 있는 근대 서울의 흔적과 이에 얽힌 인물, 사건을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 원정대의 몰입을 이끌었다.
서촌 옛길을 둘러보던 원정대는 통의동 골목의 500년 넘은 백송터를 발견했다. 해당 백송은 본래 천연기념물이었지만 줄기가 부러지는 등 상태가 악화했고 1993년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됐다. 잘려나간 고목이 안타까워서인지 지역 주민들이 주변에 자식 나무를 심어준 모습에서 따듯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근처 골목 끝에서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옛 관사 자리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사유지가 됐다. 주인은 옛 건물을 그대로 쓰는 모양이었다. 가까이 가보니 100년은 넘어보이는 처마와 나무 뼈대가 보였다. 교육진이 꺼내든 옛날 사진을 따라, 일상에서 거닐 수 있는 길목에서 역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음은 흥미로웠다.
대로변 인근의 ‘통의동 마을마당’에서도 의외의 발견을 할 수 있었다. 알고보니 이곳은 조선시대 관원들이 출근시간에 입궐하기 전까지 대기하는 ‘대루원’이다. 이곳에서 교육진은 5대 궁궐과 노래 ‘광화문연가’에 얽힌 속이야기를 들려줬다. 과거 궁궐 앞에 전차가 지나가는 것을 이용해 칼을 만들었다는 개인적인 추억 이야기도 덤이다.
원정대는 문화 공간 이상의 집에도 들렸다. 이곳은 천재 시인 이상이 약 20년간 생활했던 집터다. 철거 위기에 처했다가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매입해 살아났다. 이후 라이엇 게임즈가 후원해 새 단장을 지원했다.
기자가 바라본 서촌은 좁다란 골목과 아기자기한 풍경이 돋보이는 곳이었다. 이상·윤동주·노천명·염상섭·박노수·이중섭 등 한국 근대 문학과 예술을 꽃피운 작가들의 활동 터전임을 교육진의 안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날 교육진으로 참여한 이성남(66)씨는 “원정대원들이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배우는 걸 상당히 좋아한다. 가르쳐주는 즐거움 때문에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규홍(27·정글·‘아이번’ 이용자)씨는 “현재 모 교육대학교 재학 중이다. 나중에 학생들을 가르칠 텐데 이런 경험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배우자는 취지에서 왔다”며 “이완용만 우리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윤덕영이라는 매국노도 알게 돼서 인상깊다”고 말했다.
이후 ‘청전이상범가옥’과 ‘박노수미술관’, ‘수성동 계곡’을 관람하고 나니 슬슬 다리도 아프고 허기졌다. 지친 원정대를 위로할 수 있는 건 단연 음식이다. 교육진은 인왕산 자락의 100년 된 빨간 벽돌집으로 원정대를 안내했다. 이곳은 티모 문화유산 원정대의 종착지, ‘아워플래닛’ 다이닝 룸이다. 아워플래닛은 지속가능미식연구소로, 우리 식재료에 깃든 지속가능한 가치를 연구하고 소개하는 곳이다.
앞서 문화유산 탐방을 통해 서촌의 문화·역사·명소를 둘러봤다면, 이제는 음식으로 서촌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아워플래닛에는 특별한 사람이 있다. 김태윤 셰프는 연구소 바로 앞 건물에서 태어났고, 그곳에 아직도 살고 있는 서촌 사람이다. 지역 주민의 자손이 성장해 그 지역의 셰프로 돌아온 셈이다. 어떤 음식이든 문화든 사람을 매개체로 연결되는 법. 김태윤 셰프는 서촌의 음식을 제일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티모 문화유산 원정대만을 위해 ‘서촌 골목길 이야기 다이닝’을 준비했다.
자신을 음식탐험가라고 소개한 장민영 아워플래닛 대표는 미식 체험의 주제로 ‘지속가능한 밥상’을 제시했다. 그는 소비자가 하루 세 번 세상을 바꿀 기회를 가진다고 말했다. 바로 식사를 하면서다.
아워플래닛은 우리가 즐기는 맛있는 한 끼로 삶의 행복과 지구의 건강을 돌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장 대표는 “그러려면 우리 식탁에 변화를 줘야 한다. 또한 식탁 위에 오르는 음식의 식재료가 어디에서, 어떻게 자라는지 알고 먹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에서 나고 자란 제철 식재료를 이용할 것을 주문했다. 그럼 탄소발자국이 줄어들어 환경 보호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소비자가 지역의 생산자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날 원정대는 아워플래닛의 기조를 바탕으로 우리 식탁에 변화를 주는 체험을 했다.
장 대표는 식재료의 다양성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현재 유통되는 감자의 90% 이상이 유통이 용이하고 생산성이 좋은 수미감자인데, 만약 수미감자가 병충해에 약해지면 감자라는 종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인간의 선택에 감자의 종이 획일화되고 있지만, 소비자가 다양한 취향을 가지고 두백·추원 등 소수 감자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어떨까. 농부들은 다품종 재배를 하는 데 부담이 줄어든다. 이는 생태계 다양성 회복의 열쇠가 된다.
소수 감자의 이름을 불러주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 파악해놓을 필요가 있다. ‘내 취향의 감자 찾기’ 코너에서는 6가지 감자를 직접 맛보며 느낀 바를 테이스팅 노트에 기록할 수 있었다. 기자도 감자를 테이스팅했다. 감자야 그냥 감자지 얼마나 차이가 있겠냐는 선입견은 금방 무너졌다. 맛과 향, 질감이 모두 달랐다. 크게 점질감자와 분질감자로 구분할 수 있었고, 어떤 감자는 무슨 음식을 해먹으면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한 원정대원은 ‘추원’으로 감자전을 해먹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또 다른 이는 ‘러셋 버뱅크’가 맥도날드의 감자튀김 맛이랑 닮았다고 했다. 기자가 제일 맛있는 감자로 꼽은 ‘얼리프라이’는 최근 연구소에서 개발한 품종이라고 했다. 이외에도 서홍·다미·추원·두백 등 서로가 느낀 감자에 대한 단상을 공유함은 즐거운 체험이었다.
장 대표는 “다양한 감자 품종을 테이스팅하며 자신의 감자 취향을 찾는 시간을 통해, 인간으로 인해 획일화 된 농경지가 조금 더 다양성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내 취향의 감자 찾기가 마무리되자 곧바로 다이닝이 시작됐다. 이날 즐길 수 있었던 음식은 모두 여름을 연상시킬 수 있는 나라의 식재료로 준비됐다.
첫 번째 메뉴는 ‘타이풍의 구운 돼지고기 수박무와 자두, 초당옥수수 씀땀’이다. 강화의 밥새우, 경산의 자두, 거창의 수막부, 제주의 초당옥수수로 만들었다. 장 대표는 자두·옥수수 등을 담아 계절을 이야기하고, 동물복지 돼지고기를 사용해 줄어든 육식의 자리에 바람직한 방법으로 키운 고기를 먹길 권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돼지고기와 수박무, 자두와 옥수수.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재료들이 입 안에 들어가자 의외의 조화를 이루었다.
두 번째 메뉴는 ‘비스큐 소스를 곁들인 갯가지볼, 에어룸 토마토, 2가지 호박’이다. 태안의 갯가재, 영월의 에어룸 토마토, 용인의 맷돌호박로 만들었다. 장 대표는 호박과 토마토에 계절과 종 다양성의 개념을 담아 다채로운 맛을 선보였다. 갯가재는 맹목적으로 새우만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식재료를 소개함으로써 한 종에 집중되는 소비행태를 지적하고자 했다고 해설했다. 맷돌호박의 아삭한 식감은 호박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큼했다.
세 번째 메뉴는 ‘토종닭을 사용한 인도식 볶음밥 비리아니’다. 청양의 토종닭, 논산의 십리향쌀, 서울의 민트로 만들었다. 장 대표는 다양한 품종의 쌀을 소개하고 동물복지 토종닭을 사용해 공장식 축산의 반대 개념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비리아니는 흔히 인도 커리 식당에서 만나볼 수 있는 볶음밥보다 훨씬 깊은 풍미를 자랑했다.
네 번째 메뉴는 ‘마카롱 이화주 아이스크림 샌드’다. 용인의 이화주, 하동의 동물복지 달걀, 제주의 야생화 꿀, 제주의 백년초로 만들었다. 장 대표는 우리 어르신들이 옛부터 즐겨온 계절의 풍류를 소개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장 대표는 “서울에서 지속가능성으로 가장 큰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서촌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곳곳에 묻어있는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 ‘자연과 도시의 관계성’, ‘조금 느리게 걸어가며 이웃과 인사할 수 있는 골목’을 서촌의 특성으로 꼽았다. 이어 “사람들이 서촌 골목 곳곳을 거닐고,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존재를 느끼며 여행하듯 음식을 즐기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다운(30·원거리 딜러)씨는 “감자가 이렇게 종류가 많은지 몰랐다. 특색 있는 음식을 먹어볼 기회도 생겨서 좋았다”고 평했다. 그의 아내 윤소영(30·서포터)씨는 “티모 모자를 얻고 싶은 이용자라면 하반기에 꼭 티모 문화유산 원정대에 참여 신청을 하라고 추천하고 싶다”며 웃었다.
구기향 라이엇 게임즈 사회환원사업총괄은 “이용자들이 티모 문화유산 원정대를 통해 교과서 속 역사가 아닌 일상에 녹아든 역사를 배우고, 우리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라이엇 게임즈는 문화재 환수 외에도 왕실유물 전문 복제본 제작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티모 문화유산 원정대는 안전을 위해 혹서기인 8월에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오는 9월 중 다시 활동을 재개한다. 하반기는 상반기와 동일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며, 일정 등 상세 내용은 향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될 예정이다.
차종관 기자 alone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