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침해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여당과 정부가 학생인권조례를 손보기로 했다. 학생인권조례를 교권 추락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개정으로 책임·의무를 더해 무너진 교권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계 일각에선 교권과 학생 인권은 맞서는 것이 아니라며 교권을 보호하는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당정, 학생인권조례 개정 추진
“체벌은 없다”
26일 당정은 학생인권조례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여당과 정부는 이날 ‘교권보호 및 회복 방안 당정협의회’에서 교권 보호 및 회복을 위해 △(교원의) 정당한 생활 지도에 대한 면책권 부여 △교원의 아동학대 수사 시 소속 교육청 의견 우선 청취 및 학교장 의견 제출 의무화 △학교 교권보호위원회 제도 개선 △교육 활동 침해 행위 시 학생생활기록부(학생부) 기재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다달까지 일선 학교 교원의 생활지도 범위와 방식 등 기준을 담은 학생생활지도 고시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체벌은 없다”고 체벌 부활 우려에 대해 선을 그었다.
앞서 정부와 여당은 최근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 교사의 극단적 선택 이후 교권 하락 문제가 대두되자 그 원인 중 하나로 ‘학생인권조례’를 지목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우리 정부에서 교권 강화를 위해 국정과제로 채택해 추진한 초중등교육법 및 시행령 개정이 최근 마무리된 만큼, 일선 현장의 구체적 가이드라인인 교육부 고시를 신속히 마련하라”며 “당,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조례 개정도 병행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학생인권조례, 대체 뭐길래
2010년 경기도교육청 주도 도입
학생인권조례는 지난 2010년 10월 경기도교육청이 처음 제정한 이후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인천 제주 순으로 7곳이 시행 중이다. 지역별 차이는 조금씩 있지만 대체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사생활 보호’ ‘표현의 자유’ ‘휴식권’ 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학생의 두발 자유, 강제 야간 자율학습 금지 등이 이 조례에 근거해 각 학교 교칙으로 실행된다. 학생을 한 명의 인격체로 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란 평가도 있지만, 과도한 학생 인권 강조로 교사의 정당한 교육권이 침해받는다는 지적이 잇따르며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보수 성향의 임태희 경기교육감은 후보 당시부터 교권과 학생 인권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학생인권조례를 보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1학년 담임 교사가 사망한 사건은 이런 비판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이태규 국민의힘 소속 교육위원회 간사는 이날 당정협의회에서 “지난해 중학생이 수업하는 선생님 옆에 드러누워 휴대폰을 하는 일이 있었다. 그렇게 해도 제지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숙제 잘해서 잘했다고 칭찬 스티커 도장을 찍어주면 그렇게 안 해온 학생이 차별당했다고 아동학대로 고소 고발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권리만 주어지고 책임과 의무가 담기지 않아 제 역할을 못하고 있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학생인권조례 개정 움직임
학교 현장서도 두 목소리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두고 학교 현장에선 의견이 갈린다. 일부 교사는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하락에 근본적인 원인이 되지는 않지만, 일정 부분 일조했다고 주장한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 교사 김모씨는 “아이들이 거짓말을 해도, 문제를 일으키고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줘도 교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돌아오는 건 아동학대 신고뿐이다. 방패 없이 두들겨 맞는 것”이라며 “학생인권조례도 이러한 교권 추락에 일조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4년차 초등학교 교사 강모씨는 “학생인권조례에서 학생의 책무성을 강화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며 “법과 질서에는 권리와 함께 의무와 책임이 뒤따른다”고 말했다. 이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제정하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교사와 다양한 전문가들이 협의해 바꿔야 한다. 이번 계기로 교육현장을 둘러보고 아이들이 정말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했다.
학생인권조례를 손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 한 초등학교 교사 A씨는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하락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면서도 “지금 폐지한다고 교권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17년차 초등학교 교사 이모씨는 “조례 자체보다 조례 제정이 가져온 상징적 의미가 큰 것 같다”며 “(주변 교사들의 이야기를 보면) 개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조례보다는 교사의 정당한 교육 행위가 가능할 수 있도록 아동학대법이 개정되길 바란다. 아동학대 고소 걱정 없이 정당하게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라며 “또 학교폭력을 다시 정의해 (교실이) 아이들의 싸움 중재소가 아닌 진짜 폭력으로부터 피해 학생을 보호할 수 있도록 정상화되길 바란다”고 했다. 실제 많은 교사는 교사의 정당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초중등교육법·아동학대법 개정 등 법적 장치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씨는 “굳이 학생인권조례를 개정한다면 몇몇 힘든 학생 때문에 피해를 보는 다른 학생들에 대한 수업권 보호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다”며 “교사인권조례도 같이 제정해 학생과 교사가 상호 존중하는 학교 문화를 만들 수 있도록 사회적 지지를 보내주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학생인권조례 개정에 시동을 걸면서 관련 논쟁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교육희망네트워크·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경기지부 등 경기지역 시민단체들은 이날 경기 수원시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에서 교권이 보장된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은 적 없다. 학생 인권과 교권이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경기도교육청은 학생 인권과 교권을 편 가르고 교사와 학생을 적으로 만드는 행동을 당장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