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재미와 함께하는 행복까지, 확 바뀐 ‘WCG 2023’ [가봤더니]

보는 재미와 함께하는 행복까지, 확 바뀐 ‘WCG 2023’ [가봤더니]

기사승인 2023-07-29 18:53:09
관람객들이 행사장 입구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차종관 기자


28일 부산 벡스코 제1전시장. 글로벌 e스포츠 축제 ‘월드 사이버 게임즈(WCG)’의 개막을 알리는 현수막이 전시장 앞 천장을 수놓았다. 4년 만에 열린 오프라인 행사인 ‘WCG 2023 BUSAN’에 전국 각지의 게이머들이 모였다.

WCG의 과거가 행사장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차종관 기자


WCG는 지난 2001년부터 시작된 세계 최초의 다종목 국가대항 e스포츠 대회다. ‘e스포츠계의 올림픽’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2010년대 전까지는 가장 큰 규모의 e스포츠 대회였다.

하지만 2013년 한 차례 폐지된 이후 그 영향력이 상당히 축소됐다. 2019년 스마일게이트에 의해 부활했지만 금방 코로나19로 인해 개최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러다 지난해 빅픽처인터렉티브가 WCG의 지분 100%를 인수해 행사를 다시 개최하게 됐다.

이번 대회를 주최·주관하는 빅픽처인터렉티브는 WCG를 ‘보는’ e스포츠 대회에서 ‘참여하는’ e스포츠 대회로 변화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행사의 슬로건은 과거와 동일하게 ‘Beyond the Game’으로, 게임이 단순한 문화 활동을 넘어서 전 세계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신념이 반영됐다.

‘WCG 코인’의 모습.    사진=차종관 기자


오전 11시, 오픈 직후 행사장으로 많은 인파가 줄지어 입장했다. 행사장은 형형색색의 네온 불빛으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관람객들은 저마다 흥미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고, 부스와 무대의 스태프들은 관람객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무엇부터 둘러봐야 할까. 기자의 눈길을 끈 것은 행사장 입구에 놓여진 관람객을 위한 이벤트 안내 배너였다.

배너에 따르면, 행사장 내에서 진행되는 각종 이벤트에 참여하면 행사장 내에서 자체 재화로 사용할 수 있는 ‘WCG 코인’을 획득할 수 있다. 이 코인은 WCG 기프트샵의 대형 ‘가챠’ 머신에 사용할 수 있다. WCG 자체 제작 굿즈와 클래시로얄 아처퀸 스태츄, 춤추는 고블린 피규어, 게이밍 기어, 벤큐 모니터 등 다양한 경품을 받을 기회가 주어진다.

‘WCG 스파링 존’의 모습. 1대 1 대결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구비되어 있다.    사진=차종관 기자


관람객들은 서로 경쟁하며 WCG 코인을 벌 수 있는 ‘WCG 스파링 존’으로 향했다. 이용 가능한 WCG 스파링 존은 무려 6곳. ‘리그 오브 레전드’, ‘발로란트’,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오버워치2’,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피파온라인4’ 등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인기 게임으로 구성돼 있었다. 모든 스파링 존에 게이머들은 우후죽순 줄을 섰다. 발로란트의 줄이 제일 길어 그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스파링 존은 이름에 걸맞게 1대 1 대결을 중심으로 한 규칙으로 게임이 진행됐다. 오버워치는 랜덤 영웅으로 스폰해 50점을 먼저 달성하는 것이 승리목표였다. 스타크래프트는 유명 맵 ‘로스트템플’에서의 대결이 치뤄졌으며, 카트라이더: 드리프트의 경우 전통의 명맵 ‘빌리지 시계탑’에서 레이싱을 펼칠 수 있었다. 리그오브레전드는 흔히 ‘올스타전’에서 볼 수 있는 칼바람 매치 규칙이 적용됐다. 8분 내 챔피언이나 타워 1킬을 달성하거나, 그 시간동안 CS(크립스코어) 갯수가 높은 쪽이 이기는 식이다.

WCG 스파링 존에서 대결을 펼치고 있는 게이머들.   사진=차종관 기자


리그오브레전드 스파링에서 승리해 WCG 코인을 받은 김종훈(35)씨는 “서로 모르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1대 1 대결을 하는 것이 긴장감 넘치고 재미있었다”며 “마치 어릴 적 오락실에서 모르는 동네 친구와 한 판 때리는 거 같았다”고 표현했다. 그는 기자에게 인사한 뒤 곧장 벤큐 모니터를 뽑기 위해 가챠 머신으로 향했다.

‘WCG 레트로 게임존’의 모습. 서로 하고 싶은 게임을 하기 위해 모르는 사람과 그룹을 지어 다니는 광경이 자주 포착됐다.    사진=차종관 기자


‘WCG 레트로 게임존’에서는 현장 관람객을 대상으로 WCG 코인을 획득할 수 있는 ‘레트로 퀴즈쇼’와 ‘레트로 게임 즉석 대결’ 이벤트가 열렸다. ‘알리의 아재비디오’와 함께하는 추억의 애니메이션 보컬 미니 콘서트도 개최됐다. 

레트로 게임존에서는 훈훈한 광경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게임존은 대부분 2인이 플레이하는 게임으로 구성됐는데, 서로 하고 싶은 게임을 하기 위해 모르는 사람과 그룹을 지어 다니는 모습이 포착된 것. 한 두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눈덩이처럼 모임으로 불어난 케이스도 있었다. 금방 친해진 게이머들은 서로의 플레이를 감상하고 칭찬하기도 했다. 마치 어릴 적 오락실 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또한 ‘하우스 오브 더 데드', ‘스트리트 파이터’ 등의 옛 게임을 아버지와 초등학생 쯤으로 보이는 아들이 함께 플레이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추억에 잠기며 옛 실력을 고스란히 발휘했고, 아들은 처음 하는 게임임에도 아버지 못지않은 실력을 보여줬다. 앞서 WCG 스파링 존의 발로란트, 리그오브레전드에 비견될 정도로 레트로 게임존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KD 올스타전, 원신 e스포츠 대회가 진행 중인 스테이지 C.   사진=차종관 기자

스테이지는 W, C, G 3가지로 나뉘어 운영됐다.

무대에서는 주로 국가대항전이나 e스포츠 대회 결선이 치러졌다. ‘원신’, ‘하스스톤’, 카트라이더, ‘모바일 레전드: 뱅뱅’, ‘클래시 로얄’, ‘워크래프트 3’, ‘스타크래프트 2’ 등 종목은 다양했다. 해당 게임의 선수와 게임의 팬들은 관중석에 몰려 앉아 환호성을 지르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파도타기를 하며 e스포츠 본연의 재미를 누렸다.

무대 위 어떤 선수는 그저 게임을 즐기며 활짝 웃기도, 다른 선수는 긴장하며 마른 세수를 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순간, 웃음을 잃지 않고 상대 팀을 리스펙하는 매너를 선보였다. 우승자가 기쁨의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본 관중들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쿠키런’ 부스의 모습. 커다란 쿠키가 막대사탕을 의기양양하게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차종관 기자


이번 행사의 핫플레이스는 단연 ‘쿠키런’ 부스였다. 데브시스터즈는 TCG(트레이딩 카드 게임) 신작 ‘쿠키런: 브레이버스’를 최초 공개했다. 해당 게임은 프리게임존에서 자유롭게 즐길 수 있었는데, 수많은 티칭스태프가 포진해 한 테이블 별로 한 명씩 붙어 게임을 가르쳐줬다.

자신을 ‘쿠키런: 킹덤’ 이용자라고 밝힌 김모(18)씨는 쿠키런: 브레이버스에 대해 극찬을 남겼다. 그는 “규칙이 간단하고 ‘운빨겜’ 요소가 적어 즐기기 좋았다”며 “유희왕 혹은 포켓몬 카드게임과 유사하지만 플립카드로 역전각을 볼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고 전했다.

다만 함께 행사장으로 놀러 온 전모(18)씨는 다른 의견도 제시했다. “보드게임을 즐기는 게 귀찮다. 하더라도 모바일로 이식된 것만 한다”며 “쿠키런: 브레이버스도 모바일로 나온다면 할 것 같은데, 카드로 플레이하면 직접 경기 진행도 해야 하지 않나”라고 전하기도 했다.

‘쿠키런’ 부스에서 플립 게임과 캐리커쳐를 체험하는 관람객들.    사진=차종관 기자


이 게임의 핵심인 ‘플립’ 키워드를 이용한 게임도 있었다. 공을 던져 카드를 뒤집으면 득점이다. 게임을 잘 모르는 딸도 플립 게임만큼은 자신감을 가지고 달려들었다. 저 카드들 중 무엇이 플립카드일까. 일반카드는 5점인 반면 플립카드는 10점이다. 50점 이상 획득하면 무려 브릭 곰젤리 열기구를 받을 수 있다. 딸은 실패해서 시무룩해진 가운데 아버지는 심기일전해 플립카드가 있는 위치를 외웠다. 아버지가 공을 플립카드에 조준할 찰나, 옆에서 꺄르르 웃음 소리가 들렸다.

캐리커쳐 체험을 한 커플이 서로를 그린 그림을 들고 웃으며 셀카를 찍고 있었다. 현장의 예술인들은 쿠키런 세계관의 모습으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쿠키가 되어버린 각자의 모습이 그렇게 재밌었는지 커플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외에도 쿠키런 세계관에서 튀어나온 듯한 솜사탕, 굿즈샵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한 쪽에서는 쿠키런: 킹덤 체험존이 있어 신규 이용자를 기존 이용자가 가르쳐주는 생경한 모습도 관찰할 수 있었다.

‘레트로 장터’의 모습. 감성적인 조명 아래 몇십년 전에 출시된 것 같은 게임팩들이 새것과도 같은 상태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차종관 기자


‘레트로 장터’에서는 ‘천공의 섬 라퓨타’ 등 유명 애니메이션의 오리지널 팜플렛과 게임칩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특히 게임칩의 경우 어떤 디바이스에 들어가는 무슨 작품이건 없는 것이 없어보였다. 한 쪽에는 프라모델 박스가 한가득 쌓여 있어 덕후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이외에도 플레이스테이션 4, 게임보이, 아타리 등 중고 게임기 본체도 값싸게 팔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파는 가게에 둘러앉아 저마다 최애 장난감을 뽑고 자기것인 양 자랑했다. 여성 게이머들은 형형색색의 조이스틱, 아미보 스태츄에 한껏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코스튬 플레이어들의 모습.   사진=차종관 기자


전체 관람객 비율의 4분의 1쯤은 되어 보이는 코스튬 플레이어(코스어)들도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특히 네온 조명 근처라면 어디에서든 코스어를 찍기 위해 사람들이 동그랗게 둘러싸고 셔터를 누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행사장에서 섭외한 코스어도 있겠지만 그건 소수다. 행사를 즐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꾸미고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체 이 의상과 소품들은 어디서 난 걸까 싶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였으니 서로를 구경하는 재미마저 생겼다. 어떤 코스어들은 서로 이쁘다며 사진을 찍어주고 같이 레트로 게임존으로 향하기도 했다.

와나나 크루가 팬미팅에서 팬들의 요청에 응하고 있다. 오른쪽은 지후, 레몬, 신령의 모습.    사진=차종관 기자


지후(예명)씨는 트위터로 행사 알림이 와서 겸사겸사 WCG에 놀러왔다. 레몬(예명)씨는 아는 언니인 지후씨를 따라가기로 마음먹고, 지인인 신령(예명)씨에게도 추천했다. 결국 셋이 함께 오게 됐다. 지후씨는 발로란트를 지인들과 플레이하는 게 제일 재미있었으며, 쿠키런 이용자로서 쿠키런 IP(지식재산)의 TCG 신작을 접해 신기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각기 자신에게 익숙한 게임 캐릭터로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다. 지후씨는 “게임 행사에 갈 때면 늘 코스프레를 한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도 쉽게 교류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WCG 코인으로 장패드, 피규어, 키링을 얻은 듯 보였다. 신령씨는 자신이 수랭식 PC를 얻지 못하고 키링에 그쳐 아쉽다며 기자에게 토로했다.

가챠를 하고 있는 한 관람객. 오른쪽은 이제홍씨와 홍정우씨.   사진=차종관 기자

이제홍(20)씨와 홍정우(20)씨는 인플루언서 밤양갱씨를 보기 위해 WCG에 왔다. 이씨는 “칼바람 나락에서 1대 1 대결을 치르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카트라이더는 추억의 게임인데 최근 새로 나온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를 아는 사람과 체험해볼 수 있어서 흥미진진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하루 종일 게임을 한 뒤 얻은 WCG 코인으로 게이밍 키보드와 장패드를 얻었다. 하지만 가챠 머신 옆에는 아직 수냉식 PC와 벤큐 모니터. 각종 키보드와 마우스가 잔뜩 쌓여있었다. 이 녀석들의 주인은 누가 될까. WCG 2023 BUSAN은 오는 30일까지 개최된다.

부산=차종관 기자 alonein@kukinews.com
차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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