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못 찾으면 안락사… 유기 동물에게 주어진 10일

가족 못 찾으면 안락사… 유기 동물에게 주어진 10일

기사승인 2023-08-06 06:00:20
수의사가 유기동물에게 주사를 놓고 있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 내 이름은 2023-0706. 견생 45일 차로 길에서 태어났다. 어느 날 사람에게 구조돼 보호소에 들어갔다. 가족이 필요했다. 보이는 사람마다 꼬리를 흔들었다. 사람들은 내게 손길을 주지 않았다. 시선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어느 날 누군가가 날 찾아왔다. 안아서 데려갔다. 기뻤다. 곧 몸이 차가워졌다. 정신이 혼미했다. 짧은 생이 끝났다.

2만2573마리. 한 해 동안 안락사로 세상을 떠나는 유기 동물 숫자다. 지난해 전국에서 유기‧유실된 동물 11만2585마리 중 가족을 찾지 못한 약 20%가 약물을 맞고 인위적인 죽음을 맞았다. 이중 새 가족을 만나거나 주인이 다시 찾아간 경우는 약 32%에 그쳤다.

유기 동물 입양 플랫폼 포인핸드에 들어가면 보호 종료된 동물들의 사진과 이름 목록이 나온다. 그 중엔 일부 동물들 옆에 붙은 국화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해당 동물이 자연사 혹은 안락사로 세상을 떠났다는 의미다. 최근 3년간 안락사 혹은 자연사한 동물 50% 이상이 1년 미만 어린 동물이다.

지난달 23일 경북 포항 한 빌라에서 발견된 시츄 50마리. 연합뉴스


한 달, 새 가족을 찾는 시간

동물보호소에 입소한 동물들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21년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의 평균 보호 기간은 24일이다. 유기 동물 발생하면 지자체는 약 7~10일 동안 공고하는 기간을 가진다. 유기 동물을 잃어버린 가족이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이다. 원래 가족을 만나지 못하면 보호소에 입소해 10일가량 보호 기간을 가진다. 새 가족을 만나는 시간이다. 현행법상 일정 공고 기간이 지나도 새 가족을 만나지 못하면 안락사를 시행할 수 있다.

매해 여름, 동물보호 업계엔 유기견이 폭증한다. “시즌이 왔다”고 표현할 정도다. 동물자유연대의 ‘2016~2020년 유실‧유기 동물 분석 보고서’에서 지난 5년 동안 유기 동물 발생 건수 평균을 낸 결과, 2월 6742건에서 7월 1만2020건으로 2배가량 급증했다. 유기 동물은 매해 발생하지만, 입양률은 50%를 밑돈다. 전국에서 유기 동물이 가장 많이 입양되는 전북이 43% 정도다. 한정된 공간에 유기 동물이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안락사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전국 각 보호소에서는 입소 날짜, 입양 가능성 등을 따져 안락사를 시행 중이다.

제주도 동물보호센터는 전국에서 안락사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지난해 유입된 유기 동물 4759마리 중 55%에 해당하는 2637마리가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제주도는 마당에서 키우던 들개와 여행객들의 유기로 유입이 많은 편이다. 반대로 입양은 14%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 결국 일정 기간이 지나면 동물들은 안락사의 문 앞에 선다. 태어난 지 60일에서 100일 정도 된 어린 동물도 안락사의 길을 피할 수 없다.

모든 보호소가 보호 기간이 지난 동물을 안락사 시키는 건 아니다. 포항시 동물보호소엔 지금도 3~4년 이상 장기 보호 중인 동물들이 있다. 포항시 동물보호센터 관계자는 “전염병에 걸려 다른 동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거나, 치료 후 예후가 안 좋다고 수의사가 판단했거나,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위험성이 있는 경우 일부 안락사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광주시 동물보호소는 현재 수용가능한 동물 개체수보다 2배 이상인 포화상태다. 하지만 직원들 사무공간 등을 임시 견사로 쓰면서까지 안락사를 막기 위해 노력 중이다.

동물보호소가 안락사를 진행하는 이유엔 공간과 비용 문제가 크다. 보호소로 들어오는 유기 동물이 늘어나면 관리 비용 역시 늘어난다. 전국 269개 동물보호센터의 한 해 운영비용으로 297억원이 필요하다. 한 곳 당 약 1억원이 필요한 셈이다. 운영비용엔 구조, 치료, 보호, 안락사, 입양 보호, 시설비, 인건비, 위탁비가 포함된다. 이 때문에 지자체 동물보호소는 개체 수 관리 압박을 받기도 한다. 광주시 동물보호센터는 수용할 수 있는 동물 240여 마리보다 2배 이상인 500여 마리를 보호 중이다. 광주시 동물보호센터 관계자는 “개체수가 많다는 압박을 계속해서 받고 있다”라며 “‘시원한 임시 보호’ 캠페인을 통해 동물을 가정에서 최소 3개월 이상 보호하면 중성화, 치료비 등을 지원하는 등 입양을 독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보호 기간동안 가족을 만나지 못해 안락사 된 유기동물들. 포인핸드


동물복지를 위해 법 개정, 하지만 현실은

동물복지에 대한 시민 의식이 높아지며 지난 4월27일 개정된 동물보호법이 시행됐다.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동물보호소는 동물 20마리당 1명의 관리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동물 복지를 위해 개정된 법이지만, 동물보호소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동물복지와 거리가 멀다. 유기 동물을 관리할 인력이 부족해 안락사 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12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광주시 동물보호소에서 보호할 수 있는 동물은 현행법상 240마리다. 그러나 현재 500여 마리를 보호 중이라 현행법에 따르면 300마리는 안락사될 위기다. 광주시는 운용체계 확충 등을 위해 노력 중이다. 남택송 광주시 농업동물정책과장은 “직원을 늘리거나 개체 수는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면서도 “인위적으로 법을 지키기 위해 (동물들을) 안락사시키긴 힘들다”라고 밝혔다. 그는 “시범 사업을 통해 지자체에 지원금을 주고 15일간 임시 보호하는 사업을 계획 중”이라며 “내년에는 넓은 보호소로 이전 등 안락사를 막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포항시 동물보호센터엔 48마리의 시츄가 한 번에 입소했다. 지난달 26일 포항시 동물보호팀과 119구조대는 악취가 난다는 주민의 신고를 받고 방문한 현장에서 48마리를 구조했다. 포항시 동물보호센터 관계자는 “어느 정도 상황을 인지하고 시설 내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크게 무리는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입소한 동물들이 빨리 입양 갈 수 있도록 미용을 통해 단장도 하고 SNS 홍보를 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농축산부는 동물관리와 복지를 위한 법 개정이었다는 입장이다. 농축산부 동물복지정책과 관계자는 “동물전시업계에는 이미 적용되는 인력 기준이 있었고 이 기준을 동물보호센터까지 확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호 관리 인력 규정 안에 정규직 공무원이 필요하다는 등 제한은 없다”라며 “주기적인 자원봉사자 등도 동물관리가 보장된다면 보호관리 인원으로 인정된다”라고 설명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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