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남자는 양산 안 쓴다고요? 그럼 하남자 할게요

상남자는 양산 안 쓴다고요? 그럼 하남자 할게요

기사승인 2023-08-14 06:05:02
장마와 폭염이 나타나는 변덕스러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우산과 양산 겸용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 1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우산. 연합뉴스

“있을 땐 소중함을 모르지만, 없을 때는 그 차이가 커요”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김성빈(27·남)씨는 올해 처음 양산을 구입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더운 날 바깥에서 짐을 옮기다 쓰러진 일이 있었다”라며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불쾌한 경험이라 이번 여름 양산 구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선글라스, 토시, 손풍기 등 이른바 ‘폭염 생존템’ 인기와 함께 최근엔 양산을 이용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G마켓 양산 판매 추이에 따르면 남성의 양산 구매 증가율은 12%로 5%인 여성를 앞질렀다.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남성들이 양산 쓰면 별로다’라는 인식이 허물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6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을 찾은 시민이 양산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귀부인 아니고, 양산 쓰는 남자예요

SNS에서는 몇 년 전부터 “가수 지드래곤이 양산 한 번 써 줬으면 좋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패션 아이콘인 지드래곤이 양산을 써서 유행시키면, 남성들도 당당하게 양산을 쓰고 다닐 수 있지 않겠냐는 의미다. 지난 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남자가 양산 쓰면 이상한가요’란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남자가 양산 쓰면 게이로 본다느니, 상남자는 양산 쓰면 안 된다느니”라며 양산 쓰는 남성을 향한 시선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누리꾼들은 “쪄 죽는데 성별이 뭔 상관” “그럼 난 하남자 할래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양산을 쓰는 남성들도 아직 주변 시선에 부담을 느낀다. 김씨는 양산을 쓰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가 지인들에게 ‘네가 무슨 귀부인이냐’며 놀림당한 기억이 있다. 한번은 양산을 쓰고 번화가를 지나가던 중, 어린아이에게 ‘저 아저씨는 비도 안 오는데 우산 써’라는 말도 들었다. 김씨는 “주변 남자 지인들도 남자가 양산 쓰는 것을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이상제(27·남)씨는 “저를 제외하고 주변에 양산을 쓰는 남성은 거의 없다”며 “어느 지하철역 근처에서 한 남성분이 양산을 쓰고 있는 걸 보고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씨는 “요즘 자외선이 너무 강해서 양산을 매일 들고 다닐까 고민 중”이라며 “양산을 쓰기 전과 후 느껴지는 더위 차이가 크다. 양산을 접으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워져서, 바로 다시 양산을 쓴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인근에서 양산을 쓴 시민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양산 쓰는 남자, 센스 있어 보여요

양산 쓰는 남성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도 바뀌고 있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심모(26·여)씨는 “과거엔 양산을 쓰는 남성들이 많지 않아서 여자들의 전유물이란 인식이 있었다”라며 “요즘엔 양산 디자인도 유니섹스로 나오고, 남성분들도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원 춘천시에 거주하는 최모(26·여)씨도 “요즘 양산을 쓰는 중년 남성분들이 많이 보인다”라며 “(양산을 쓰면) 오히려 센스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 남성들은 양산을 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직장인 김모(27·남)씨는 “양산은 화려하고 레이스가 달린 느낌이라 그동안 주변 인식 등 이유로 이용하기 꺼려졌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최근엔 양산도 우산과 비슷한 디자인과 형태로 나와서, 주변 인식 등 장애물이 사라진 것 같다”며 “내 피부는 내가 지킨다는 생각에 양산 이용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남성들이 양산에 관심을 보이는 원인을 뷰티 시장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영향으로 해석했다. 이수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날씨에 따른 모든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 변화가 남성, 여성 구분 없이 극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남성들 사이에서 양산 구매가 유행”이라며 “남성들의 양산 구매율이 높아진 현상은 피부와 탈모 등 미용에 신경 쓰는 남성들이 늘어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확실히 뷰티 시장에서 남성들의 지위가 예전과 다르다”라고 분석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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