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사건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습니다. 가족의 사랑, 친구들 덕분에 회복할 수 있었어요.”
마약 투약 논란으로 4년 전 방송에서 모습을 감췄던 방송인이자 광주외국인학교 이사장 하일 (로버트 할리)씨가 방송이 아닌 국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마약의 위험성과 주변의 관심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기 위함이다.
한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과 군부대 마약류 반입 사건 등 일상 곳곳에 마약의 손길이 뻗치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14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열린 ‘해외 청년들에게는 술보다 흔한 마약’ 토론회에 외국 유학생 출신 청년들과 전문가들이 모여 마약 문제 해결책을 모색했다.
이날 가장 눈길을 끈 이는 하씨였다. 오랜만에 공개 석상에 얼굴을 비친 그는 ‘마약 투약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주제로 말문을 열었다. 하씨는 “(마약 중독은)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 우정이 있어야 회복할 수 있다”며 “마약 중독자들의 치료와 재활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약 문제가 전 사회적 문제로 확산하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지난 1997년 한국으로 귀화한 미국계 한국인인 하씨는 2019년 필로폰 투약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하씨는 “한국에서는 마약 관련 교육 시설, 치료 병원이 너무 부족하다”며 “지역 곳곳에 중독 재활 관련 비영리법인 단체가 생겨 실질적 교육과 심리상담이 이뤄져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 센터, N.A.(Narotics Anonymous)에서 도움받았던 과거를 언급하며, 이같은 단체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촉구했다. N.A.는 마약중독자 회복을 위한 자조 모임이다.
해외 체류 경험이 있는 청년들은 ‘해외 학생들의 마약류 진입 장벽이 낮다’고 입을 모았다. 파티 뒤풀이, 길거리 매점 등에서 마약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승한 컬럼비아대학 2학년생은 △대마초 합법화 △마약성 기호 식품 확산 △값싼 합성 마약의 확산 △무차별 마약 배포 범죄의 확산 등을 최근 마약 시장의 변화로 꼽았다. 그는 “한국은 아직 마약 유입 초기기 때문에 마약 유입 차단과 확산 방지 방안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기혁 태영호 의원실 청년 정책보좌관도 “미국의 청년 커뮤니티는 이제 ‘마약 문제’를 넘어 ‘마약 문화’가 뿌리박힌 사회”라고 말했다.
다만 모든 약물과 마약을 ‘불법’으로 낙인찍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박진실 법무법인 진실 대표변호사는 “모든 약물과 마약은 일정 부분 의학적 효과가 있다”며 “대마는 무조건 규제해야 하고, 마약은 불법이라는 낙인효과를 찍을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의료적 연구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마초 합법화를 두고도 “대마 사용에 있어서 의료적 부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태 의원은 “수십 년간 마약 문제를 처벌 위주로 바라봤다. 재활·치료 위주로 접근법을 바꿔야 한다”며 “마약 중독자들을 치료하는 병원들에 대한 국가적 지원도 적다”고 했다. 이어 “모든 학교에서 마약의 위험성을 알리는 교육들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화돼야 한다”며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태 의원과 청년 정책보좌단은 마약의 원료가 되는 식물을 수출입 목적으로 재배·소지할 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