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난민학살…‘인권탄압국’ 사우디, 물 건너간 엑스포?

이번엔 난민학살…‘인권탄압국’ 사우디, 물 건너간 엑스포?

인권단체 HRW, 사우디 인권유린 폭로
“박격포 동원한 사우디, 최소 655명 에티오피아 이주민 살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사우디·후티 반군에 보고서 제출할 것”
美 전면조사 촉구·유엔 우려 표명

기사승인 2023-08-23 14:29:36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 19일(현지시간) 사우디 제다에서 열린 아랍연맹 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자비한 인권탄압 문제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우디 국경수비대가 최근 15개월간 아프리카 이주자 수천 명을 학살하고 생존자들의 인권을 참혹하게 유린했다는 국제인권단체의 폭로가 나오면서다. 국제사회는 일제히 우려를 표명하며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그간 반정부 언론인 토막 살해 사건 등으로 비판받아온 사우디의 ‘인권 침해국’ 오명도 한층 짙어질 전망이다. 이번 폭로를 계기로 2030세계엑스포 유치 가능성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1월 사우디로 입국하려다 공격을 받아 다리를 잃은 에티오피아인.   휴먼라이츠워치 홈페이지 캡처.

앞서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보고서를 통해 “사우디 외딴 국경 지역에서 지난 15개월 동안 어린이를 포함한 최소 655명이 살해됐다”고 21일(현지시각) 밝혔다. 보고서에는 에티오피아 출신 이주자 38명을 포함한 총 42명의 학살 증언과 전문가들의 검증, 위성사진 등 종합적인 내용이 담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우디 국경수비대는 총·폭발 무기 등을 사용해 비무장한 이주민을 공격했다. 박격포까지 동원해 수십 명을 한 번에 학살했다. 이주자에게 총 맞을 신체 부위를 스스로 선택하라고 강요한 뒤, 사격하는 등 각종 학대행위도 자행했다. 공격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다른 생존자를 성폭행하라고 명령했다. 이를 거절하면 즉결 처형했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최근 정부의 인권 유린으로 예멘을 거쳐 사우디로 이주하고 있다. 적게는 10명에서 많게는 200명까지 집단 월경을 시도한다. 인권 단체들은 이 과정에서 숱한 이주민들이 투옥과 구타 등 학대 행위를 경험하고 있다고 전했다. HRW는 보고서에서 “사우디 국경수비대는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이주민들을 향해 폭발 무기를 사용하거나 근거리 총격을 가했다”라며 “사우디 정부의 이주민 살해 정책의 일부로 자행된 것이라면 이는 반인륜적인 범죄”라고 질타했다. 사우디 정부는 이같은 주장을 정면 부인하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EU) 본사 앞에서 미국 성조기와 EU 깃발이 흔들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사회의 공분은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기구인 유럽위원회(EC)는 22일(현지시각) 사우디 정부와 예멘의 후티 반군 당국에 보고서 제출을 예고했다. 피터 스타노 EU 외무부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유럽연합이 HRW의 주장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리야드와 예멘의 전략적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후티 반군에 이를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에티오피아 정부가 사우디 당국과 함께 전체 문제를 조사하겠다는 발표를 한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고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보도했다. 앞서 에티오피아 정부는 HRW 보고서가 발표된 지 하루 만에 사우디 당국과 협력해 이번 사건을 즉각 조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프랑스 공영방송 프랑스24도 “프랑스 외무부가 투명한 조사를 촉구하며 사우디 당국에 예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 국제법 존중과 민간인 보호를 촉구했다”고 22일(현지시각) 전했다.

미국 정부와 유엔도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며 우려를 표명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런 의혹들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사우디 정부에 제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사우디 당국이 철저하고 투명한 조사에 착수하고, 국제법에 따른 의무를 지킬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고 21일(현지시간) AFP 통신은 전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도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발간한 보고서가 “일부 매우 심각한 의혹을 제기했다”면서 이런 상황이 “매우 우려된다”고 언급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국경에 위치한 알 타빗 수용소.  휴먼라이츠워치 홈페이지 캡처.

그간 국제 사회에서는 2030세계엑스포 개최 후보국에서 사우디를 제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사우디의 지속적인 사형 집행 △여성 인권 옹호자들에 대한 침묵 △해외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표적 수사 등 무자비한 인권 탄압이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지난 2018년 터키에서 피살된 반체제 언론인 자말 까슈끄지 암살사건도 재조명됐다. 까슈끄지는 미국 워싱턴 포스터 등에서 사우디 왕실을 비판했던 미국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로,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가 사우디 정부가 보낸 암살팀에 토막 살해됐다. 당시 미국 정보 당국도 사우디 실세인 빈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암살을 직접 지시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빈 살만 왕세자는 세계적 기피 인물로 떠올랐다.

사우디를 2030세계엑스포 유치 후보국 지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제네바에 본부를 둔 MENA 인권단체의 커뮤니케이션 담당관인 자이납 파야드(Zeinab Fayad)는 BIE에 “만약 사우디의 후보 등록이 통과되고, 2030세계엑스포를 개최하게 된다면 이는 전 세계가 사우디의 끔찍한 기록을 덮어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며 “사우디의 행동은 세계 엑스포의 정신과 완전히 모순된다”고 말했다고 지난 5월 중동 전문 매체 미들이스트아이(MEE)는 보도했다.

이달 초 유엔 전문가들도 사우디의 인권 침해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프로젝트 참여 기업들이 심각한 인권 침해에 기여하거나 직접적으로 연계되지 않도록 할 것을 강조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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