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맞은 명절 연휴를 일가친척 간 ‘정치 설전’으로 인해 망칠까 두려워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27일 쿠키뉴스 취재에 응한 청년들은 명절 기간 가족과의 식사 자리가 부담스럽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구속 영장 기각 사태, 윤석열 정부의 이념 논쟁, 총선 등 굵직한 정치 이슈가 이어지면서 의견 충돌이 잦아진 탓이다.
경기 안양에 사는 직장인 박정은(26)씨. 박씨는 이번 추석에 가족들이 모이더라도 정치 이야기는 피할 생각이다. 매년 명절마다 벌어지는 ‘밥상머리 정치 설전’ 때문이다. 세대·지역이 다른 만큼 지지하는 정당 등 정치적 견해 차이가 크다. 친지들의 다툼을 목격한 것도 여러 번이다. 박씨는 “밥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다 친척들이 다른 정치성향으로 싸운 적이 많다”라며 “각자의 생각을 인정하는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눠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식사 자리가 불편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치에 무관심한 청년들도 비슷한 고민을 내놨다. 서울에 거주하는 이모(25)씨는 지난 설과 달리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다. 이씨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데 친척 어른들로부터 ‘국민이라면 정치·경제 등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는 훈계를 듣기 일쑤”라며 “생각만 해도 벌써 피곤하다. 올 명절에는 집에서 쉴 예정”이라고 말했다.
같은 청년 세대 간 오가는 정치 얘기마저 부담스럽다는 하소연도 있다. 특히 남녀 친지간 ‘젠더 이슈’ 관련 설전이 되풀이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경기 용인에 사는 이민희(30·여)씨는 지난해 명절 사촌 남동생과 말다툼을 벌였다. 당시 대선후보들의 공약에 대한 견해 차이가 도화선이었다. 이씨는 “‘이대남(20대 남성)’, ‘이대녀(20대 여성)’ 등 용어를 써가며 격하게 싸웠다”라며 “지난 명절 이후로 아직까지도 사촌과 연락을 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까봐 걱정된다”라고 했다.
청년들은 명절에 정치 이야기를 되도록 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취업 준비생 이모씨(28)는 “즐거운 명절을 보내기 위해선 대화를 통해 절충할 수 없는 민감한 주제는 피하는 게 좋다”라며 “특히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강조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