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배모(26)씨에게 매달 1일은 OTT서비스 이용 금액 1만7000원이 자동 결제되는 날이다. 이전만큼 OTT를 자주 시청하지 않지만, 해지하기 곤란한 상황이다. 구독을 멈추면 계정에 함께 등록된 부모님의 시청을 막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온라인 가장’이 된 배씨는 책임감을 느끼며 묵묵히 정기 구독을 이어가고 있다.
OTT서비스를 대신 결제하거나 콘서트·공연 티켓팅을 대신하는 등 중장년층 부모의 문화생활을 돕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전엔 오프라인에서 가능했던 일들이 모바일 서비스로 대체되면서 자녀들이 온라인 가장을 자처하는 새로운 효도 방법이 자리 잡는 모양새다.
부모님의 팬 활동을 위해 예매가 어려운 콘서트 티켓팅을 자녀가 대신하는 건 떠오르는 효도 트렌드 중 하나다. 강원도에 거주하는 직장인 신현진(26)씨는 최근 세 번째 시도 끝에 임영웅 콘서트 티켓을 구해 부모님께 선물했다. 신씨는 “티켓팅에 성공하자 추석 연휴 내내 어머니가 주위에 자랑하셨다”라며 “세기의 효녀가 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부모를 대신해 예매에 뛰어드는 자녀가 많다는 건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임영웅 팬덤은 50~60대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임영웅 콘서트를 가장 많이 예매한 건 20~30대다. 오는 27일 개막하는 ‘2023 임영웅 전국투어콘서트 서울’ 티켓팅 예매자 통계를 보면 30대(33.6%)가 가장 높고 20대(33.6%)가 뒤를 이었다. 오히려 40대(15.2%)와 50대(7.2%) 예매자는 비율이 낮았다.
자녀들은 부모를 위해 본인 카드를 배달 어플리케이션에 등록해주기도 한다. 방송인 풍자는 최근 한 유튜브 영상에서 본인 카드가 등록된 배달 앱을 가족들이 함께 사용 중이라고 밝혔다. 전북 전주시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26)씨도 이 같은 방법으로 부모님에게 식비를 지원한다. 이씨는 “부모님이 모바일뱅킹을 아직 어려워하신다”며 “멀리서나마 효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바일로 가능한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모바일을 이용하는 중장년층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지난해 방송매체이용행태조사에서 60대 46.6%가 스마트폰을 필수매체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37.6%, 2021년 44.1%에 이어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디지털 미디어렙사 나스미디어가 지난 3월 발표한 ‘2023 인터넷 이용자 조사(NPR)’에서도 50대 53%가 주 이용 쇼핑 방법으로 모바일 쇼핑을 꼽았고, 50대 70% 이상이 SNS를 이용 중이라고 답했다.
모바일 서비스에 대한 중장년층의 관심도는 높지만, 서비스 이용을 시작하려면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자영업을 하는 강모(26)씨는 “부모님이 스마트폰을 사용해 회원가입이나 결제하는 걸 어려워하신다”라며 “OTT서비스를 직접 결제한 뒤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 드린다. 부모님들이 사용하기엔 아직 어려운 듯하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의도치 않게 온라인 가장이 된 것에 부담을 느끼는 청년들도 있다. 직장인 임모(26)씨는 “부모님께서 내가 결제한 OTT 콘텐츠를 자주 시청하는 걸 보면 뿌듯하다”면서도 “구독을 해지하고 싶어도 부모님이 잘 보시니까 해지를 못 한다”고 말했다. 총 다섯 개의 OTT 서비스를 구독 중인 임씨는 매달 결제되는 수만원대 비용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다. 그는 “매달 여러 개 서비스에서 고정 비용이 나가니까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는 부모 세대에서 나아가 고령 취약 세대에도 온라인 서비스 사용에 대한 도움이 이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자녀들이 부모들의 온라인 서비스 이용을 돕는 모습에 대해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모님이 부탁해서가 아닌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해주는 게 효도”라며 “새로운 효도 트렌드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설 교수는 “중장년층에서 나아가 나이가 더 많은 70~80대 어른들에게 이런 효도를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