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애들 중 절반은 갖고 있어요. 요즘 학교에 가져가면 선생님께 혼나서, 학원이나 친구들과 놀 때 가지고 와요. 재밌고 신기해요.” (초등학교 3학년 A양)
지난 10일 오전 11시 서울 한 초등학교 인근 완구점에 가보니, 가판대에 수십 개의 ‘당근칼’이 진열돼 있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당근칼은 칼날이 모두 한 손에 잡히는 크기다. 긴 형태부터 야광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은 칼날 부분을 칼집에 넣을 수 있게 만든 잭나이프 형태였다.
완구점 사장 B(50)씨는 “한 달 전쯤 많이 팔리다가 지금은 주춤한 상태”라며 “아이들이 이미 다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부모들은 사주기 꺼리는 눈치지만,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하니 어쩔 수 없이 구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플라스틱이지만 팔면서도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초·중학생 사이에서 ‘당근칼’이 유행하면서 학부모들과 교사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아이들이 당근칼로 서로 몸을 찌르거나, 쓰러지는 등 흉내를 내는 놀이까지 유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까다로운 규제와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쿠키뉴스가 만난 9~13세 초등학생 15명 중 13명은 당근칼을 “본 적 있다”고 답했다. 이 중 5명은 당근 칼을 구매해 소지하고 있었다. 구매 이유는 대부분 ‘재밌어서’였다. 이날 길에서 만난 초등학교 6학년 C군은 “그립감이 좋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당근 칼 사용 연령은 14세 이상이지만, 무인 문구점과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구매에 아무 제재가 없었다.
초등학생들이 자주 접하는 틱톡과 유튜브에서도 당근 칼 관련 게시물들이 다수 올라와 있다. 틱톡에 당근칼을 검색하면 ‘당근칼 기술’ ‘당근칼 간지나게 돌리는 법’ 등의 글들이 수십 개다. 장난삼아 친구를 찌르는 동영상도 찾아볼 수 있었다.
학부모들은 당근칼 유행을 걱정하는 분위기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박대근(42)씨는 “예전에도 장난감 칼이 있었지만, 당근칼은 가지고 노는 연령대가 많이 낮아진 것 같다”며 “원래 중·고등학생들이 갖고 놀았지만, 지금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예 팔지 않았으면 한다. TV나 유튜브에 나오는 것만이라도 규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씨의 아들 박모(9)군은 “반 친구들이 당근칼을 많이 갖고 있다”라며 “요즘은 학교에 갖고 오면 선생님께 혼난다. 가지고 놀다가 다친 친구를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교사들도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강원도 한 초등학교 교사 김모(26)씨는 “아이들은 폭력성을 모방할 수 있다”며 “기업 측에서 판매할 때 구매자들이 알아챌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업 시간에 당근칼 관련해서 토론을 진행한 기억을 떠올리며 “한 6학년 학생이 당근칼을 구입할 때 법률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뿐 아니라, 아이들의 삶과 가장 직결된 가정에서도 위험하다고 설명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당국은 교내 당근칼 유행을 막으려는 분위기다. 최근 대구시교육청은 관내 초·중학교에 ‘당근칼 소지에 유의해 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발송했다. 일부 초등학교들은 당근칼 교내 소지를 금지한 상태다. 초등학교 3학년 A양은 “5학년 선배가 당근칼을 들고 왔다가 교장선생님한테 뺏겼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어른보다 아이들에게 규제 기준을 더 까다롭게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난감에 익숙해지면 다른 날카로운 물건을 다룰 때도 쉽게 다룰 수 있다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이들은 장난감 칼을 사용하면서 강해보이는 모습에 우월감 등을 느낀다”며 “모형 칼이지만 실제 칼과 다르다는 생각을 못 할 수 있기에 흉기가 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14세 미만 아동들이 구매할 수 있는 제품과 구매할 수 없는 제품을 구분해주는 눈에 띄는 표기가 있어야 한다”며 “국가기술표준원 등에서 신뢰할 수 있는 마크를 만들어 어린아이 제품에 안전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