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문 닫는 날 꿈꿔요”…3000원 찌개집 사장님의 바람

“식당 문 닫는 날 꿈꿔요”…3000원 찌개집 사장님의 바람

기사승인 2023-11-17 06:21:01
지난 14일 오후 6시쯤 방문한 따뜻한 밥상. 사진=이예솔 기자


지난 14일 오후 6시30분 서울 마천동 식당 ‘따뜻한 밥상’ 4호점 간판엔 “김치찌개 3000원” “밥 무한리필 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길을 지나던 시민들의 눈을 사로잡는 건 가격이다. 한 시민은 간판을 가리키며 “김치찌개를 정말 3000원에 팔고 있는 게 맞냐”고 여러 번 물었다.

1만원으로 밥 한 끼 먹기 어려운 고물가 시대, 여전히 저렴한 가격을 고집하는 식당이 있다. 따뜻한 밥상은 이문수 신부의 ‘청년밥상 문간’에서 운영 방식을 전수해 만든 브랜드로 주로 목사들이 운영한다. 요리에 ‘요’자도 모르던 하상욱(32)씨는 밥 한 끼로 사람을 살리겠다는 마음 하나로 앞치마를 둘렀다. 전국에 13호점까지 있는 따뜻한 밥상은 2020년 연신내에 1호점을 낸 뒤 지금까지 3000원이란 저렴한 가격으로 김치찌개를 팔고 있다.

손님들에게 3000원 김치찌개가 주는 힘은 컸다. 취업준비생 이현영(29)씨는 “생활비에서 제일 많이 차지하는 게 식비”라며 “자취하는 취준생에게 이런 가게들은 행복을 준다. 저렴한 가격이라 퀄리티는 기대를 안 하고 왔는데 정말 맛있었다”고 말했다. 직장인 황승현(51)씨는 “우연히 왔는데, 밥값이 너무 싸서 놀랐다”며 “얼마 되지 않지만, 거스름돈을 가게 안 저금통에 넣고 나왔다”고 말했다.

따뜻한 밥상에서 파는 3000원짜리 김치찌개 메뉴. 밑반찬으로 콩나물이 나온다. 사진=이예솔 기자


3000원 찌개를 팔아 가게를 운영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따뜻한 밥상은 매달 적자다. 적자를 메꾸기 위해 하씨는 평일엔 식당을 영업하고, 주말에는 목사 일을 겸한다. 3000원으로 가격을 정한 2018년엔 그릇 당 200원 정도의 이윤이 남았다. 하지만 물가가 오르면서 가게 사정도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손님들의 밥상을 지키기 위해 3000원 가격을 고집하고 있다. 하씨는 “가격을 올릴지 고민을 안 해 본 건 아니다”라면서 “1호점 사장님께서 손님들 지갑이 두꺼워지지 않았는데, 우리가 가격을 올리면 안 하느니만 못 한 거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가 많이 좋아지고, 손님들이 잘살게 돼서 가격을 올려 달라고 애원하면 고민해 볼 것”이라며 웃었다.

따뜻한 밥상의 메뉴판. 김치찌개 가격은 3000원, 가장 비싼 고기사리(대)는 2000원이다. 사진=이예솔 기자


식당 사정을 아는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이날 키위를 들고 찾아온 정순희(70)씨는 “응원하는 마음이다. 어려운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도와주지도 못하고,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식당에서 서빙 봉사를 하는 최강휘(13)군은 “앞으로 평생 봉사할 것”이라며 “어른이 돼서도 (따뜻한 밥상에서) 봉사하면서 느낀 마음을 잊지 않고 이어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손님이 후원자가 되기도, 후원자가 손님이 되기도 한다. 식당 주인 하씨는 “갑자기 기도하다가 오시는 분, 방송 보고 찾아오시는 분 등 과일이나 헌금을 하고 가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면서 “신기하게 계속 (운영이 가능하도록) 도와주신다”라고 말했다. 이어 “식당을 연 건 나지만, 유지되는 건 봉사자와 손님분들 덕”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날 오후 8시 식당 마감 시간까지도 손님들의 발길은 끊기지 않았다. 하씨는 한 손님에게 “500원짜리 메뉴가 메뉴판에 있는 것만으로도 각박하고 쪼들리는 삶에 위안이 된다”는 말을 들은 후, 앞으로도 가격을 절대 올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식당 운영은 개인적으로 하지만, 이웃을 위해 베풀자는 정신은 널리 공유하려 한다. 하씨는 식당 문을 닫는 날을 꿈꾼다. 그는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인 뒤 없어지는 게 최종 목표”라며 “배고픈 사람이 없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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