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고비에 섰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겨냥해 도덕이 없는 것은 ‘부모 잘못’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이후, 후폭풍이 계속되면서다. ‘주류 희생’ 권고안에 대한 지도부·중진·친윤계의 침묵과 혁신위 내부에서 포착된 불협화음 조짐도 위기를 가중하고 있다.
혁신위의 동력이 떨어진 핵심 원인으로는 인 위원장의 잦은 설화(舌禍)가 꼽힌다. 인 위원장이 이준석 전 대표를 ‘준석이’이라고 지칭하며 ‘부모 잘못’을 언급한 사태가 대표적이다. 인 위원장은 지난 26일 충남 태안에서 열린 국민의힘 청년 및 당원 트레이닝 행사에서 “준석이는 도덕이 없다”며 “그것은 준석이 잘못이 아니라 부모 잘못이 큰 것 같다”고 했다.
이튿날 여권에서는 “선을 넘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때 집권 여당의 대표를 지냈고, 정치권에 발을 들인 지 12년이 넘은 인물의 부모를 언급한 것은 과했다는 지적이다. 친이준석계로 꼽히는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 역시 “꼰대”, “패드립(패륜적 말장난)” 등이라고 질타하며 비판 수위를 바짝 끌어올렸다. 인 위원장을 향해 극찬과 기대감을 표하던 당내 분위기도 혁신위 출범 초기와 180도 달라졌다. 인 위원장의 실언 리스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 전 대표도 강한 불쾌감을 표했다. 그는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나이 사십 먹어서 대표를 지냈던 정치인한테 ‘준석이’라고 당 행사 가서 지칭한다는 자체가 어디서 배워먹은 건지 모르겠다”며 “소위 젊은 사람들이 이걸 ‘패드립’이라 그러는데 패드립이 혁신인가”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어 “정치 12년 하면서 부모 끌어들여서 남 욕하는 건 본 적이 없다”며 “혁신위 활동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직격했다.
그간 이 전 대표에게 막대한 공을 들여온 혁신위의 행보도 빛바래졌다. 인 위원장은 이 전 대표의 징계 취소를 1호 혁신안에 담았고, 이 전 대표를 만나기 위해 ‘깜짝 부산행’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진정성을 의심받게 될 전망이다. 비판을 의식한 듯 인 위원장은 27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방문을 예고했다가 갑작스럽게 일정을 취소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급하게 외부 일정을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인 위원장은 같은 날 “이준석 전 대표와 그 부모님께 과한 표현을 하게된 것 같다”라며 “이 전 대표와 그 부모님께 심심한 사과의 뜻을 전한다”라고 사과의 뜻을 표했다.
혁신위 내 ‘집안 싸움’도 문제다. 박소연·이젬마·임장미 혁신위원은 지난 23일 혁신위원회의에서 사의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위 활동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판단에서다. ‘혁신위는 김기현 대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시간끌기용’이라는 취지의 한 혁신위원의 발언이 도화선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에서는 이같은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친윤·중진·지도부 불출마 또는 험지출마 권고에 대해 꿈쩍도 하지 않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 주말 자신의 지역구인 울산 남구에서 의정보고회를 연 김기현 대표는 “(윤 대통령과) 어떤 때는 하루 3~4번씩 전화도 한다”고 발언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지역구 재출마 의지를 시사함과 동시에 ‘윤심(尹心)’을 내세워 혁신위 압박에 맞서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혁신위가 오는 30일 희생 혁신안을 정식 안건으로 의결해 최고위원회에 통보할 예정인 가운데, 지도부의 외면이 계속된다면 혁신위원들의 사퇴가 현실화할 수 있다. 혁신위에 전권을 약속한 김 대표가 혁신위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모습은 여권 전체의 혁신 진정성마저 흔들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여당 혁신위가 더불어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8월 당의 쇄신을 내걸고 출범한 김은경 혁신위는 닻을 올린 지 51일 만에 조기 퇴장했다. 김은경 혁신위원장의 ‘노인폄하’ 발언부터 ‘시부모 거짓 봉양’ 논란에 휩싸이며 되레 당의 리스크로 급부상하면서다.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될 뚜렷한 혁신안을 내놓지도 못했고, 당의 화합을 주도하기는커녕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에 휘둘린다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당시 민주당의 상황과 현 국민의힘이 유사하다는 평이다.
여권에서는 혁신위 자진 해체를 촉구하는 주장이 나왔다.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BBS 라디오에서 “지도부와 혁신위가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며 혁신위에 대한 회의감을 나타냈다. 하헌기 전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도 지난 4일 “민주당도 코인과 돈 봉투 사태에서 대뜸 김은경 혁신위를 만든 적 있었다. 당 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따로 논 것”이라며 “지금 인요한 혁신위도 비슷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