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간병비를 건강보험에 적용하기 위해 ‘간병비 급여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요양원) 간의 온도차가 극명하다. 요양병원은 간병비 급여화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는 입장이지만, 요양시설은 “총선 표를 얻기 위한 포풀리즘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9일 정치권과 의료계에 따르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28일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더세인트요양병원을 찾아 간병비 급여화에 대한 현장 관계자와 보호자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요양병원의 간병비 급여화는 민주당 총선 1호 공약이다.
이 대표는 “‘간병 파산’ 얘기가 유행되기도 하고, 작년엔 ‘간병 살인’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며 “간병비를 건강보험 제도 내로 편입할 경우 국가 부담이 늘긴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효율적일 수 있다. 개인 비용 부담을 줄이고, 사회적 비극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간병비 전부를 급여화해 당장 추진하는 것은 비용 부담이 꽤 크다고 한다”며 “순차적으로 요양병원부터 시작해 범위를 넓혀 나가는 방향으로 추진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내년 10개 요양병원에서 관련 시범사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예산 80억원을 확보한단 방침이다. 민주당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예산심사소위원회를 통해 2024년 간병비 지원 시범사업 예산을 80억원으로 증액·의결한 상태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관련 예산 16억원을 전액 삭감한 바 있다.
이개호 정책위원회 의장은 “갈수록 간병비 부담이 높아지고 있다. 간병비 표준 계약서가 정립돼 있지 않아 각자 개별, 사적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면서 “내년 10개 요양병원 대상의 시범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전국으로 확대해 나갈 것인지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현재 요양병원의 간병서비스는 의료법에 해당되지만,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대상에서 제외돼 제도권 범위 밖에서 관리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요양병원은 직접 간병인을 고용할 수 없고, 교육이나 관리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요양병원마다 간병인 고용비용도 천차만별이다. 반면 요양원은 장기요양보험을 적용받아 간병인 비용을 100% 지원받고 있다.
이에 간병비를 장기요양보험으로 급여화해 가격을 평준화하고 요양병원에서 직접 인력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단 요양병원의 입장과 가격 대비 경쟁력을 갖춘 병원에 환자가 몰려 시설 생존에 위협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는 요양기관 입장이 상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간병 급여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요양병원들은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남충희 대한요양병원협회 회장은 “요양병원 간병 부담 때문에 가족 간의 관계가 단절되고, 부모를 입원시켜놓고 연락도 되지 않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며 “이제 국가에서 간병비를 책임질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간병비 부담에서 해방돼야 건강과 경제적 능력을 되찾을 수 있고, 간병인도 떳떳하게 4대 보험에 가입해 양지로 나올 수 있다”며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를 하루 속히 시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장기요양기관들은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가 오히려 건보 재정을 악화시킬 것이라며 강경한 반대 입장이다. 한국노인복지중앙회 등 요양기관 관련 4개 단체들은 지난 2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야당의 간병 급여화 추진을 “표를 구걸하는 표퓰리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권태엽 회장은 “초고령 사회에서 늘어나는 노인을 표밭 갈기,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려는 정책은 반드시 멈춰야 한다”며 “이는 결국 요양시설에서 요양 서비스를 받아야 할 노인들이 요양병원에서 불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는 등 과잉의료에 따른 재정 낭비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건보 재정 관리 당국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야당의 간병비 급여화 추진을 예의주시하면서 상황을 지켜보겠단 짧은 입장만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