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 급락으로 이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주가연계증권(ELS)에서 대규모 손실이 사실상 확정됐다. 올해 상반기까지 약 2조원이 넘는 금액이 만기가 도래할 예정인데, 가장 많은 금액을 판매한 KB국민은행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반면 우리은행의 경우 물량이 가장 적어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홍콩 ELS, 1월 만기규모만 9172억원…대규모 손실 불가피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따르면 1월 ‘홍콩H지수 연계 ELS’(홍콩 ELS) 상품의 만기상환 금액은 917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월은 1조6586억원으로 전달 대비 80.83% 늘어나며 3월은 1조8170억원으로 증가한다. 4월은 상반기 최대 규모인 2조5553억에 달한다. 상반기 H지수 ELS상품 만기 규모(10조207억원)의 4분의1이 4월에 집중되 있다.
홍콩 ELS는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를 사모·공모를 통해 주가연계펀드(ELF)와 주가연계신탁(ELT) 형태로 판매했다. 문제는 홍콩H지수가 급락하면서 사실상 대규모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홍콩 ELS 전체 판매 규모를 보면 약 20조원에 달하는데, 이 중 15조원이 은행에서 팔렸다. 국민은행의 판매 잔액이 7조8458억원으로 가장 많으며 △신한은행 2조3701억원 △하나은행 2조1782억원 △농협은행 2조1310억원 △우리은행 413억원순이다.
이 중 올해 상반기 중 만기 도래 물량은 총 8조4100억원에 달한다. 은행별로 보면 KB국민은행의 만기 도래분이 4조7726억원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이어 △NH농협은행(1조4833억원) △신한은행(1조3766억원) △하나은행(7526억원) △우리은행(249억원) 순서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1~12월 홍콩 ELS의 주요 판매사 12곳에 대한 판매 실태를 확인하는 현장 및 서면조사를 실시한데 이어 올해 1월8일부터 KB국민은행, 한국투자증권을 시작으로 이들 금융사에 대한 현장검사에 나섰다.
DLF·DLS 사태 피했던 국민은행의 아이러니
이번 사태에서 가장 긴장하고 있는 은행은 국민은행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은행은 앞서 은행권에서 발생한 사모펀드 및 파생상품 불완전판매 논란을 비켜간 은행이다.
지난 2018년 DLF·DLS사태가 터졌을 때 금융당국은 해당 사태를 계기로 2020년부터 은행권에 고위험 파생상품 총량규제를 도입하며 2019년 11월 말 기준 파생상품 판매 잔액 이내로만 취급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국민은행에서는 당시 DLF 대신 ELS 취급에 주력해 판매 잔액이 13조원에 달했고, 경쟁 은행에 비해 2~3배 많은 13조원의 판매한도가 설정됐다. 때문에 국민은행이 ELS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국민은행은 원금 손실이 상대적으로 큰 녹인(Knock-in·원금 손실 발생 구간)형 상품을 집중적으로 판매한 것도 우려사항이다. 녹인형은 계약 기간 중 기초자산 지수가 ‘녹인 기준선(50%)’ 아래로 떨어져 녹인이 발생한 경우 만기 시점에 지수가 ‘최종 기준선(70%)’을 넘어야 약정된 원금과 약정 이자를 받을 수 있다. 다른 은행들의 경우 대부분 계약 기간 지수가 얼마나 내려가는지 상관없이 만기 때 지수가 가입 시보다 65% 수준 이상이면 원금과 이자가 주어지는 ‘노녹인’형 상품을 판매했다.
새옹지마 우리은행, 홍콩 ELS 피해규모 가장 낮아
반면 DLF 사태로 큰 내홍을 치렀던 우리은행의 경우 홍콩 ELS 판매가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ELS 가운데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 잔액은 249억원으로 5대 은행 중 가장 적다.
우리은행의 홍콩H지수 ELS 판매 잔액이 적은 이유는 앞선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로 대규모 원금 손실을 봤던 전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2021년 1월 비예금상품위원회를 발족했다.
이후 2021년 2월 비예금상품위원회에는 ELS 기초자산 구성 안건이 상정됐다. 상품부서는 당시 지수가 오르고 있던 H지수를 편입한 ELS 비중 확대 의견을 냈지만 리스크총괄부와 상품모니터링팀은 중국 리스크가 크다며 반대했다. 비예금상품위원회에서 논쟁 끝에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편입은 시키되 총판매금액의 5% 이내로 관리하자는 가이드라인을 설정했다.
이에 투자상품부서는 해당 의견을 적극 수용해 홍콩H지수 편입 ELS 비중을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만기 배리어 수준을 낮춰 손실을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것이 우리은행의 설명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은 홍콩H지수 편입 ELS 판매 금액이 400억원 규모로 극히 적다”며 “사모펀드 사태 이후 투자자 중심으로 상품 선정, 판매 및 사후관리, 투자자 보호 등 투자상품 판매 프로세스를 개선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