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짓는 구수한 냄새가 주방을 메운다. 주방 옆에 위치한 식당에서는 시민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서울 답십리동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 점심 식사 시간이다. 2일 다소 쌀쌀하고 흐린 날씨였지만, 식사를 위해 모인 사람들로 밥퍼는 북새통을 이뤘다.
무료 급식소 밥퍼는 36년째 취약 계층에게 따뜻한 밥을 제공하고 있다. 이곳은 1988년 청량리역 광장에서 라면을 끓여주던 것에서 시작했다. 현재는 매일 500명에게 음식을 제공한다. 일요일을 제외한 매주 6일간 아침과 점심 두 끼를 준비한다. 아침 식사는 오전 7시부터 8시까지, 점심식사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다. 이날 오전 10시30분 점심 배식 시작 30분 전부터 밥퍼는 사람으로 가득 찼다. 한 번에 약 13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식당 내부는 거의 만석이었다.
밥퍼는 시민들에게 무료급식소를 넘어 사랑방으로 통한다. 신설동에 거주하는 임민호(78)씨는 “밥 얻어먹는 게 아니라 사람 보러 오는 거다”라며 “오던 사람이 갑자기 안 오면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 탁자에 삼삼오오 모인 시민들은 주머니에서 젤리 등을 꺼내 나누거나 안부를 물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들은 “밥도 밥이지만, 사람도 고프지”라며 입을 모았다.
서울 지역은 물론 경기도에서 찾아온 이도 있었다. 의정부에 거주하는 정종주(83)씨는 36년간 매일 새벽 5시 밥퍼를 찾기 위해 집을 나선다. 단순히 식사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정씨에게 이곳은 동년배들과 대화를 나누며 마음 편히 쉬는 곳이다. 정씨는 “8시에 아침 먹고 점심 전까지 앉아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했다”며 “한 시간 걸려 와도 하나도 안 힘들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밥퍼를 매일 찾는 시민 대부분은 연세가 지긋한 고령층이다. 90세를 넘긴 안옥순씨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아프다”면서도 “저녁은 안 먹고, 매일 아침, 점심 여기 와서 식사를 해결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고물가 등으로 급식소가 사라질까 근심하기도 했다. 80대 김정순씨는 “(밥퍼 같은) 복지시설을 조금이라도 더 늘려서 사람들한테 행복을 줘야 한다”며 “더 늘리진 못하더라도, 여긴 없어지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본격적인 점심 식사 시간대를 앞두고 주방 한편에선 봉사자들이 손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날 점심에 제공된 404명분 식사는 봉사자 8명을 포함한 10여명이 준비했다. 오가는 손길 속엔 훈훈함이 가득했다. 대학생, 중년 등 다양한 연령대 봉사자들은 양파를 썰고 국을 끓였다. 코로나 종식 후 자원봉사자가 늘긴 했지만, 매일 수백명의 식사를 준비하기에 현재 인력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후원금과 식대도 부담이다. 기업 후원이 줄고 물가가 치솟으면서 급식소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밥퍼에 따르면 기업 후원은 2022년에 비해 지난해 15%가량 줄었다. 반면 식대는 33%가 올랐다.
그럼에도 급식소의 밥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음식이나 작은 후원으로 온정을 나누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밥퍼 관계자는 “큰돈은 줄었지만, 주변 가게에서 재료를 보내 주시거나 후원하시는 개미군단이 있다”며 “한 번은 누군가 비닐봉지에 쌀을 담아 문 앞에 갖다 놓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밥퍼는 고물가 속 어려운 상황에서도 식사 제공에는 지장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