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종사자를 괴롭히는 크런치 모드가 크게 증가했다. 크런치 모드를 두고 노사의 견해 차이도 눈에 띈다. 향후 갈등 요소 될 수 있으리란 우려가 나온다. 크런치 모드란 게임 등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에서 마감을 앞두고 수면, 영양 섭취, 위생, 기타 사회활동 등을 희생하며 장시간 업무를 지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21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3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크런치 모드 지난해 19.1%에서 올해 38.2%로 크게 늘어나났다. 크런치 모드가 가장 길었던 일주일 노동시간은 평균 51.6시간으로, 한 번에 지속된 총 노동시간은 평균 24.2시간으로 나타났다.
특히 300인 이상 사업체 소속 종사자 응답률이 높았다. 300인 이상 기업 종사자 59.4%가 경험했다고 이야기했는데, 100~299인 규모는 47.1%로 큰 차이가 난다. 5인 미만은 19.0%만 크런치 모드 경험했다고 답했다. 매출액 규모가 큰 곳 역시 크런치 모드 경험률이 높은 걸로 나타났다. 회사 매출 규모 100억원 이상 기업 종사자 75.0%가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마감을 앞두고 수면을 줄이고 영양 섭취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초장시간 일하는 크런치 모드는 게임업계 고질병이다.
지난 2016년 11월 한 게임회사에선 크런치 모드로 일하던 개발자가 급작스레 숨지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에 개발자 유족이 낸 유족급여 청구에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회는 업무와 사망과의 인과관계가 상당 부분 인정된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문제는 크런치 모드를 바라보는 종사자와 사업체 간 시각차가 노사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종사자는 38.0%만 필요하다 답했지만, 사업체는 57.0%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점수로 환산했을 때, 사업체는 2022년 59.9점에서 2023년 62.2점으로 늘어났지만, 종사자는 2022년 54.2점에서 지난해 51.9점으로 낮아졌다.
차상준 스마일게이트 노조 SG길드 지회장은 “크런치 모드로 빚어지는 노동자 건강권⋅휴식권 침해나 분위기 특성으로 직장 내 괴롭힘 등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이런 요소가 노사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크런치 모드를 했음에도 사업 실패가 노동자에게만 전가될 수 있다. 또 권고사직으로 이어지는 등 고용 안전 문제로 연결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종사자와 사업체 간 문제 접근 방식이 견해차로 이어졌다는 설명도 했다. 차 지회장은 크런치 모드를 완전히 없애긴 힘들겠지만, 개발 프로세스를 개선하거나 무의미한 대기 시간을 줄이고 촉박한 개발 기간 등을 개선한다면 일정 부분 해결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전문가는 장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출시를 앞당기고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노동자 건강에는 악영향을 미친다”며 “장기적으로 보면 노동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불러온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 근로시간을 늘려가는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사업체에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는 관행이 돼가고 있다”며 “노동 시장 변화 흐름과 맞지 않다. 특히 불규칙하게 일하는 걸 강요해서는 안 된다. 제도적 기반을 구축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향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