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에서 학생들을 통제함’
‘수학여행 가는 버스에서 영화를 틀어주지 않음’
‘수학여행 직후 영화를 보여준 다른 반과 달리 수업 진도를 나감’
‘쓰레기를 제대로 버리라고 말함’
‘점심 먹기 전 젤리 먹지 말라고 함’
‘지각하지 말라고 말함’
‘제대로 청소하지 않은 학생을 불러 다시 청소시킴’
경남 초등교사 A씨가 받고 있는 아동학대 혐의 일부 내용이다. 지난해 12월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됐으나, 일부 현장 교사들은 여전히 아동학대 신고로 고통받고 있다.
학생 말 한마디로 정서적 아동학대 교사로 내몰리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지난 17일 ‘서이초 교사 순직 인정 촉구 및 늘봄 정책 규탄 집회’에 참석한 A씨는 “40여가지 이유로 아동학대로 고발당했다”라며 “3명의 학생이 말을 맞추고 정서 발달 침해를 주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 중엔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주의를 준 학생이 ‘왜요 싫은데요. 모르겠는데요’라고 말해서 ‘~요’라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는 “무엇이 어떻게 아동 정서 발달을 해치는지 학생, 학부모 그 누구도 구체적으로 소명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교사들은 아동학대 신고는 쉽지만, 혐의를 벗는 건 어렵다고 토로한다. 경기 파주시 초등교사 B씨는 “반 학생이 다른 학생을 폭행해 사과 편지를 쓰게 했으나 쓰지 않아 교실 뒤로 내보냈다가 아동학대로 신고당했다”라며 “상담 기록과 녹음 등을 증거 자료로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내부 징계를 받았다”라고 밝혔다. 지난 14일 7시간 넘게 경찰조사를 받았다는 A씨도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경찰은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냐’며 학생의 말을 더 신뢰한다”라며 “한여름에 에어컨을 안 틀어줘서 아동학대를 당했다는 주장에 긴팔 점퍼를 입고 수업하는 사진을 증거로 제출했으나 에어컨을 튼 걸 증명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럼 교사는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라고 호소했다.
명확한 ‘정서적 아동학대’ 기준 필요
그 결과 학교 현장에선 담임 교체, 보복 등을 목적으로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가 남발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15년차 초등교사 B씨는 “아동학대죄로 고발해도 무고죄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악용된다”라며 “다른 사안으로 반복해서 신고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밝혔다. 경기 초등교사 함모씨도 “학부모가 학폭 사건 이후 담임 교체를 요구했으나 교체되지 않자 아동학대로 신고했다”라고 말했다.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가 많다는 건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정서적 학대 신고가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1%대로 극히 적다. 특히 ‘교사’에 의한 아동학대는 전체 아동학대 중 5%대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발간된 보건복지부의 ‘2022 아동학대 주요통계’를 살펴보면, 고소‧고발로 이어진 정서학대 신고 3696건 중 ‘형사처벌’이 된 사건은 48건으로 전체의 1.3%에 그친다. 전체 아동학대 행위자 중 초‧중‧고교 직원인 경우는 전체 5.7%(1602건)에 불과하다. 82.7%(2만3119건)가 부모에 의한 학대다.
교사들은 현재의 모호한 정서적 아동학대 기준을 더 명확하게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관계자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 정서학대 신고가 남발되면서 교육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며 “도대체 무엇이, 어디까지가 정서학대에 해당하는지 명확히 하고 정당한 생활지도는 면책하는 조항을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모호하고 포괄적인 정서학대에 대해 법령 상 명확한 기준 마련과 정당한 교육활동과 생활지도에 대한 아동학대 면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국회에도 ‘정서학대’의 범위를 규정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일 ‘아동복지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정서적 학대를 ‘아동의 정신건강과 발달에 해를 끼치는 행위’로 정의하던 기존 법 조항에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유기·방임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행위’라는 내용을 덧붙였다. ‘해를 끼친다’는 모호한 표현에서 벗어나, ‘손상’ ‘유기·방임’ 등 행위의 수준을 구체적으로 언급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