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여제’ 김가영(하나카드⋅41)이 통산 두 번째 월드챔피언십 정상에 섰다.
17일 오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SK렌터카 제주특별자치도 LPBA 챔피언십 2024’ 결승전서 김가영은 김보미(NH농협카드)를 상대로 세트스코어 4:3(11:9, 10:11, 3:11, 5:11, 11:10, 11:2, 11:3)으로 대역전 승리를 거두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로써 4연속 월드챔피언십 결승 무대에 오른 김가영은 지난 2021-22시즌 월드챔피언십 우승 이후 두시즌 만에 두 번째 우승(준우승 2회)에 올라 PBA-LPBA 최초 월드챔피언십 2회 우승을 달성했다.
동시에 LPBA 통산 7승으로 최다 우승 부문에서도 스롱 피아비(캄보디아⋅블루원리조트)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지난 2월 시즌 8차투어(웰컴저축은행 웰뱅 챔피언십)서 스롱 피아비가 우승을 추가하며 앞선 지 한 달 만이다.
김가영은 우승 상금 7000만원과 랭킹포인트 5만점을 더하며 1억2005만원(9만7300점)으로 종전 4위서 상금랭킹 1위로 이번 시즌을 마쳤다. 여기에 누적 상금 3억4090만원으로 LPBA 최초 누적 상금 3억원을 돌파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또 김가영은 이번 대회 32강 조별리그 장가연(휴온스)과의 첫 경기서 애버리지 2.444를 기록, 대회 한 경기서 가장 높은 애버리지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웰뱅톱랭킹’(상금 200만원)도 수상했다.
한 큐에 세트의 모든 점수를 달성하는 ‘퍼펙트큐’는 32강 조별예선서 스롱 피아비를 상대로 9득점을 한 번에 성공시킨 한지은(에스와이)이 달성, ‘TS샴푸 퍼펙트큐’(상금 2000만원) 수상의 주인공이 됐다.
결승전 첫 세트는 18이닝 장기전 탐색 끝에 김가영이 먼저 승리를 챙겼다. 김가영은 초반 6이닝까지 6:5 근소하게 앞선 이후 9~11이닝 연속 3득점(9:7)에 이어 14이닝과 18이닝째 1득점씩 추가해 11:9로 이겼다. 2세트서는 하이런 5점을 앞세운 김보미가 접전 끝에 11:10 김보미가 맞불을 놨다.
김보미는 2세트 승리 기세를 이어 3,4세트를 따내며 승기를 잡았다. 3세트 7이닝까지 김가영을 1점으로 묶은 김보미는 2이닝째 3득점, 7이닝째 4득점 등으로 9이닝만에 11:3으로 승리한 후 4세트서도 김가영이 11이닝동안 5득점에 그친데 반해 김보미는 3이닝부터 3-2-2득점, 8이닝 2득점 등 12이닝만에 11:5로 격차를 벌렸다. 김보미의 세트스코어 3:1 리드.
월드챔피언까지 단 한 세트 남겨둔 김보미는 5세트 10이닝까지 10:6으로 앞서고도 이후 5이닝 동안 공타로 돌아서며 김가영에게 기회를 헌납했다. 김가영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12이닝부터 1~3득점을 차곡차곡 쌓아 16이닝째 11:10 한 세트를 만회, 세트스코어 2:3으로 추격했다.
김가영이 추격에 고삐를 당겼다. 6세트 첫 이닝부터 두 차례 뱅크샷을 포함한 하이런 10점 장타를 뽑아내며 일찌감치 풀세트 돌입을 예고했다. 김보미가 2점으로 쫓았으나 크게 벌어진 격차를 좁히지 못했고 3이닝서 남은 1득점을 채운 김가영이 11:2로 승리, 승부의 7세트로 돌입했다.
여유를 찾은 김가영은 첫 이닝을 공타로 돌아섰으나 2이닝부터 공타 없이 7이닝까지 11점을 나누어 3득점에 그친 김보미를 따돌리고 결승점을 통과했다. 11:3, 세트스코어 4:3으로 김가영의 대역전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5세트 우승 직전서 1점을 남기고 패배한 김보미로선 아쉬운 한 판이었다.경기 후 김가영은 “우승한 대회들 중 가장 실감이 나지 않는 것 같다”면서 “사실 지는 줄 알았다. 공격도 수비도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김)보미는 저보다 훨씬 씩씩하게 문제들을 잘 해결해 나갔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도 “‘나에게 기회가 오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포기하면 부끄러우니까’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시즌 최종전인 월드챔피언십을 마무리한 PBA는 오는 19일 오후 4시30분부터 서울 그랜드워커힐 워커홀에서 ‘2023-24시즌 프로당구 PBA 골든큐 시상식’을 끝으로 시즌의 막을 내린다.
다음은 ‘SK렌터카 제주특별자치도 LPBA’ 우승자 김가영, 준우승자 김보미와 일문일답.
[우승자 김가영 인터뷰]
우승 소감은
우승한 대회들 중에서 가장 실감이 나지 않는 것 같다. 우승해서 너무 행복하고 기쁘다. 물론 이전에(월드챔피언십)우승을 한 번 하긴 했지만, 당시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즌이었다. 그래서 이번 시즌을 잘 준비했고, 또 이번 대회도 잘 준비했다. 자신도 있었고. 그런데 또 시합이라는 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긴장도 했다. 그래도 결과가 이보다 좋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행복하다. 여전히 실감이 잘 안 난다.
역대 가장 어려운 결승전이었던 것 같은데
사실 지는 줄 알았다. 1:4로 그냥 지는 줄 알았다.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공격도 제대로 안 되고 수비도 안 되고. (김)보미 선수는 잘 치고 있고, 테이블 적응하는데 애를 좀 많이 먹었다. (김)보미 선수는 저보다 훨씬 씩씩하게 문제들을 잘 해결해 나가더라. 그래서 4세트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한테도 기회가 오겠지’, ‘기회 오면 나는 잘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중후반이 넘어갈수록 준비했던 게 잘 안 됐다. ‘오늘은 좀 어렵겠구나’ 싶었다. 상대가 10점까지 도달했을 때도 스코어가 밀려서 ‘역시 우승은 하늘이 정해주는 건가 보다’했다. 그래도 ‘나에게 기회가 오면 포기는 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포기하면 부끄러우니까’ 그런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오히려 웃음을 지었는데
사실 상황이 웃기다기보다는, 이게 웃겨야 웃는 건지, 웃어야 웃을 일이 생기는 건지 솔직히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웃어라도 본 거다. 그러면 마음을 놓고 편안하게 칠 수 있지 않을까, 웃을 일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느낌이었다. 즐거워서 웃은 건 아니다. ‘그래, 인상 쓰면 뭐 하나. 그냥 한번 웃어보자, 그럼 웃을 일이 생길 수도 있지.’ 하는 의미다. 경기가 잘 안 풀리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냥 그런 생각으로 그냥 미소 한번 지어보고 했던 것 같다.
준비한 것이 잘 안됐다고 했는데, 어떤 준비한 것이 안됐나
공격력이든 수비적인 부분이든 훈련한 만큼 제대로 퍼포먼스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대회에 돌입한 지 열흘 가까이 되어 가는데, 아무래도 테이블 컨디션을 파악을 못했던 것 같다. 사실 테이블이라는게 온도에 따라서 조금 예민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테이블 컨디션을 모르겠더라. 짧아질 것 같은데 길고, 길 것 같은데 짧았다. 이걸 잡지 못하고 있는 제가 망망대해에 나 혼자 돛단배를 탄 느낌마저 들 정도로 막막했다. 이기고 지고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컨트롤을 못하고, 맞추지 못한다는 것이 막막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노를 안 저을 순 없지 않나. 어느 방향이든 저어는 봐야지. 그래서 그냥 일단 저어는 보자. 그런 생각이었다.
앞으로 무엇을 더 이루고 싶나
결과적으로 어떤 트로피를 더 갖고 싶다든지, 그런 것들은 사실 내려놓은 지 오래됐다. 그 부분은 제가 포켓볼 선수로 활동할 때 이미 ‘트로피를 몇 개 더 가져야지’, ‘이 대회에서는 내가 꼭 이 트로피 가져가야지’하는 생각은 옛날 일이다. 왜냐하면 제가 갖고 싶다고 다 가져지지도 않고, 그것을 갖지 못한다고 해서 열심히 하지 않을 것도 아니다. 그게 있다고 해서 그걸로 내가 거만을 떨 게 아니라면, 그 결과에 대해서 내가 최선을 다했고, 내 수준이 올라가고 있고, 내가 조금 더 내가 치고 싶은 당구에 가깝게 치고 있고, 그것에 더 만족을 느끼려고 노력을 했었다. 지금은 그런 부분이 훨씬 더 만족스러운 것 같다. 물론 트로피 추가하는 것, 상금을 받는 것. 너무 행복하지만 제가 목표하고 있는 그 당구를 계속 친다는 것, 발전하고 있다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한 행복감이 훨씬 더 큰 것 같다.
같은 팀(하나카드) 주장인 김병호 선수가 경기장에 오지 못했는데
사실은 꼭 뵙고 싶었다(웃음). 경기장에서 제가 병호 형님과 장난을 많이 친다. 제가 오늘 ‘지켜보고 있다’(제스처를 취하며)고 ‘나 응원하라’고 농담을 하려고 했는데. 차마 못 오시겠다고 하시더라. 그런데 저라도 그럴 것 같다. 만약 저의 제자와 제 팀원과 경기를 한다면 못 올 것 같다.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한다. “죄송합니다. 병호 형님, 보미는 아직 젊지 않습니까?(웃음)”
형님이라 부르나?
맞다. 형님이라고 부른다. ‘선배님’이라고 하기엔 제가 선배다.(웃음) 그렇다고 ‘오빠’라는 호칭을 쓰기엔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그래서 뭐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했는데, 형님이라 부르고 있다.
이번 대회 최대 고비는
숨 넘어가기 직전이었던 건 오늘이었지만, 가장 떨리는 경기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다. 강지은 선수와 대결에서 이기는 선수가 16강에 진출하는 경기였다. 그때가 제일 많이 긴장됐었던 것 같다.
오늘 우승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가족의 힘이다. 우리 가족들은 늘 저의 경기를 찾는데, 경기 중간에 딱 한번 엄마 목소리가 쨍하고 한 번 들린 적이 있다. 그때 ‘아, 이거 우리 엄마가 지르는 소리다’하고 느꼈다. 엄마가 원래 조용할 때 혼자만 목소리를 잘 안 내시는데, 엄마가 ‘김가영 파이팅’하셨다. 그때 제가 헤매고 있을 때였는데, 엄마 목소리가 간절하게 느껴졌다. 엄마 목소리 덕분에 힘을 찾았다.
[준우승자 김보미 인터뷰]
경기를 마친 소감은.
너무 아쉽다. 그래도 이번 시즌 마무리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잘했다고 생각한다. 대회가 끝나서 후련하다.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쳤다. 패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경험 부족도 있었던 것 같고, 매치포인트 순간에 저에게 집중되는 카메라, 장내 아나운서 이런 주변 상황들에 너무 집중이 됐다. 제가 그런 압박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 같다.
마지막 샷을 칠 때 기억이 나나.
결정적인 패인은 마지막 옆돌리기라고 생각을 한다. ‘그냥 편하게 힘만 들이지 말고 치자’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힘이 들어갔다. 타격이 들어간 것 같은데, 그 순간 부담 때문에 어깨가 굳어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 김병호가 결승전에 없었는데, 따로 스케줄이 있었나.
그건 아니다. 원래 경기장 방문 예정이었는데 아빠(김병호)는 하나카드의 주장이다. 결승전에서 (김)가영 언니와 대결하다 보니까 누구 한 명 응원하는게 부담스러우셨던 것 같다. 하나카드 측에서도 아빠를 모셔오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셨는지 경기장에 안 오셨다.
지난 시즌 크라운해태 챔피언십 준우승 후 경험치가 있는 상태였는데. 어떤 마음으로 임했나.
결승전을 경험했으니 ‘편하게 치자’고 생각했다. ‘4강이나 결승이나 뭐가 다르겠나’하는 생각이었다. ‘지난 결승전 보다는 긴장감이 덜하겠지’하는 생각도 있었다. 사실 생각보다 마음은 괜찮았는데 막상 경기에 들어서서 제가 쫓길 때, 또 상대가 저와 격차를 벌릴수록 힘들었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그게 잘 안 됐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