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의심 사고를 낸 차들이 사고 이력을 밝히지 않은 채 중고차 시장에서 되팔리고 있어 사고 이력 고지의무가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급발진 사고가 인정되지 않아 매입 시 고객에게 고지할 의무가 없어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운전자 A씨는 구매한 지 1년이 조금 지난 차를 타고 가던 중 급발진 의심 사고를 겪었다. 차량은 구매 당시 원금을 주고 구입했다. A씨의 차량은 훼손이 심한 급발진 의심 사고와 달리 비교적 저속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해 앞 차 범퍼만 손상됐다. 수리 후에도 급발진 의심 사고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 폐차를 고민하던 중 사고 조사를 나온 보험사 직원으로부터 차를 사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직원은 원금의 반도 못 미치는 금액을 제시했지만, A씨 입장에선 손해보단 이득이 커 팔기로 했다.
17일 쿠키뉴스는 A씨가 사고 당시 사용했던 번호판을 조회했다. 번호판은 검색되지 않았다. 이미 번호판을 교체해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동차 번호판은 사람의 주민등록증과 같다. 자동차 번호판의 조회를 통해 사고 이력, 침수 이력, 주행거리 등 중요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구매자가 중고차 매입 전 반드시 알아봐야 하는 중요한 요소다. 문제는 국내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매매 과정에서 운전자나 중고차 딜러가 명시하지 않아 또 다른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중고차 딜러 관계자는 “침수 이력, 주행거리, 성능점검기록부가 고지의무”라며 “실제 중고차 업계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로 재판매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간단한 교체 후 기본적인 성능검사를 통과하면 시세대로 값을 받을 수 있어 차를 판매하는 소비자와 구입하는 중고차 딜러에게 ‘윈윈’인 셈이다. 서로 차를 팔아야 한다는 공통 관심사가 또 다른 위험을 낳고 있는 구조다.
이어 관계자는 “인증 중고차를 제외하고, 일반 중고차 시장에서는 딜러 혹은 차주 양심에 맡겨지는 부분이라 급발진 의심 사고 이력을 고지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조사에서도 급발진 인정을 안 한다는 것을 중고차 시장에서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중고차 딜러 관계자는 “급발진 의심 사고 차량이라는 이력을 남길 이유가 없다. 매입할 땐 저렴하게 사서 팔 때는 제값을 받을 수 있는 기회”라며 “사고 이력 조회를 통해서도 확인이 어렵다. 기록하더라도 보닛 혹은 차량 도어 교체 정도로만 기재한다. 급발진 의심 사고라고 밝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급발진에 대해 오랫동안 정부에서 방관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안타깝지만 소비자가 중고차 매입 시 급발진 의심 사고 이력을 거를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고 덧붙였다.
인증 중고차는 급발진 의심 사고 이력을 어떻게 검증하고 있을까.인증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급발진 의심 사고 이력이 있는 차가 매물로 들어왔을 때 어떤 부품을 수리해야 하는지, 어떤 기록을 살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 자체가 미약한 현실”이라며 “이는 국토교통부, 제조사 측에서 급발진에 대한 공식 인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고차 업계에서도 급발진 이력을 확인하는 방법이 아직 전무하다”고 밝혔다.
또한 “만약 차주가 양심적으로 급발진 의심 사고 이력을 밝혀 ECU(자동차 전자제어장치) 교체를 하더라도 성능 점검 기록부로는 급발진 의심 사고 이력에 대한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운전자가 중고차 시장에 급발진 의심 사고 차량임을 밝히고 판매 의사를 보이면 반응은 어떨까.
기자는 중고차 업체 3곳에 급발진 의심 사고를 겪은 차량임을 밝히고 판매를 시도해 봤다. 3곳 모두 거절했다. 알고서는 매입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다만 이들 중 한 업체는 “급발진 의심 사고 이력을 밝히는 것이 법적으로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밝히지 않으시면 매매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급발진 의심 사고 차량들이 시중에 유통될 경우 제2, 제3의 사고가 우려되지만, 급발진 인정 사례가 없어 뚜렷한 대책 수립이 어려운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는 “급발진 의심 사고가 생긴 차라고 하더라도 정비를 거친 뒤 중고차 시장에 유통하고 있다. 문제는 급발진 의심 사고 이력을 거를 수 있는 제도적인 방법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급발진 관련해서 인정을 안 하고 있다. 급발진 여부 검사를 안 하고 중고차 시장에 내놓는 현실”이라며 “급발진을 법으로 인정하지 않는 구조에서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조은비 기자 silver_b@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