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분을 반영한 대입전형 시행계획이 확정됐음에도 의료계가 법원의 최종 결정이 남았다며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의대 교수들은 의료계가 대법원에 제기한 재항고 1건과 서울고등법원에 제기한 즉시항고 3건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대학 입시요강 발표를 중지할 것을 요청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전국 40개 의대 교수가 속한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2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2025학년도 입시가 8개월도 남지 않은 2월6일, 정부는 갑자기 의대 입학 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하며 입시 현장을 대혼란의 장으로 바꿔놓았다”며 사법부가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에 행정절차를 중지하고 재판에 협조하라는 ‘소송 지휘권’을 발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내 의학 교육 환경이 도미노처럼 쓰러질 위기에 처했다고 했다. 이들은 “복지부 장·차관은 전 국민 앞에서 국민 건강과 생명을 책임져 온 핵심 소수 집단인 전공의를 향해 막말과 협박이 담긴 도미노 칩을 날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도권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 인구가 적어서 그런 것이 아닌 것처럼 무너진 지역·필수의료는 의사 수가 모자라 발생한 일이 아니다”라며 “지역·필수의료 회생 즉, 공공 복리를 위해 의사를 양성하는 기관인 의대 교육 현장이 붕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의학 교육 현장의 붕괴 여파가 14년간 지속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들은 “학생 정원이 40명인 학교에 130명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마치 ‘40명 정원인 버스에 40명의 325%에 해당하는 승객 130명을 태워라’라고 하는 버스회사 사장의 명령과 동일하다”며 “승객의 생명은 아무도 담보하지 못하고 버스는 그대로 고장 나버리고 말 것이다. 의학 교육 현장도 매한가지다”라고 비판했다.
32개 대학 총장들을 향해선 2025학년도 대학입시 요강을 수정해 발표하는 것을 중지할 것을 촉구했다. 또 전국 40개 의대 재학생 1만3000여명이 제기한 ‘의대 정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고등법원 항고심 재판 3건과 부산의대 재학생 4명의 대법 재항고심 재판 1건에 대한 판결이 30일 이전에 결정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법원에서 재항고 건의 최종 결정을 위해 ‘복지부와 교육부는 최종 결정권까지 입시요강 발표 등의 행정절차를 중지하고, 대법원 재판에 즉시 협조하라’는 소송 지휘권을 발동해 주길 간청한다”며 “우리 사회의 소수인 의료인의 간곡한 외침을 경청해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 24일 대교협은 제2차 대학입학전형위원회를 열고 내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 변경사항을 심의·의결했다. 이에 따라 올해 치러질 내년도 의대(의학전문대학원 포함) 모집 정원은 전년도보다 1509명 늘어난 4567명으로 결정됐다.
의대 증원으로 인해 실력 없는 ‘저질 의사’가 양산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김종일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회장은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수없이 호소해도 소귀에 경 읽기다”라고 했다. 이어 “의학 교육 자체가 불가능하며 저질 교육이 될 게 눈에 보인다. 저질 의사가 양산될 것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증원에 찬성할 수 있겠나”라며 “우리는 정치인이 아니고 선생님이다. 입학할 예비 의대생, 휴학으로 진급이 안 될 예과 1학년 학생들이 안쓰럽다”고 덧붙였다.
의대생을 가르칠 기초의학 교수는 씨가 말랐다고 했다. 전의교협에 따르면, 기초의학 교수는 향후 5년 이내 229명이 퇴직 예정이며 지난 3년간 신규 임용된 인원은 전국 245명이다. 40개 전체 학교로 보면 연간 평균 2명 정도 임용하고 있는데, 이 중 1명은 의사과학자이고 다른 1명은 이과학 출신 교수다. 의대 증원 대상이 된 한 학교의 기초의학 교수 수요조사서를 보면, 2025학년도에 12명의 기초의학교수를 신규 임용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평균 임용 인원 2명보다 10명이 더 필요한 것이다.
김 회장은 “기초의학 예비 교수는 씨가 말랐다. 신축 건물은 부지도 확보되지 않았다. 카데바(해부용 시신)를 확보할 방법도 없다”며 “정부는 총장들이 펜대를 굴려 작성한 수요조사에 나와 있는 모든 인프라들, 그 중에서도 채용 예정 교수를 확인하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제발 정치적 이해를 뒤로 하고 제대로 된 환경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게 해달라”라며 “내년 이맘때 학교에 실망한 얼굴이 눈에 선하다. 미안하지 않은 학교, 얼굴을 들지 못하는 교수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피력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