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급하다더니”…연금개혁, 문재인 정부 전철 밟나

“하루가 급하다더니”…연금개혁, 문재인 정부 전철 밟나

21대 국회서 연금개혁안, 사실상 불발
與 “22대에 ‘진짜’ 연금개혁 추진”…野 “미루자는 이유 뭐냐”
김연명 민간위원장 “연금개혁, 또 5년 늦춰질 수도”

기사승인 2024-05-28 06:05:02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지난 정부는 연금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 없이 4개 대안을 제출해 갈등만 초래했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전철을 반복하지 않고, 제대로 된 연금개혁을 이뤄내기 위해 착실히 준비해왔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연금개혁의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30일 국무회의에서 이같이 공언했으나, 연금개혁이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여야가 어렵사리 모수개혁 합의안을 도출했지만, 정부·여당이 22대 국회로 처리를 미루면서다. “국민의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며 연금개혁안 처리를 반려한 문재인 정부에서의 연금개혁 실패 과정과 겹쳐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 원내대표는 27일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비공개 회동을 갖고 국민연금 개혁안 처리 등을 위한 본회의 일정에 대해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오는 29일 21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는 만큼, 연금개혁 처리는 사실상 무산됐다.

여야가 모수개혁안에 극적으로 합의하는 등 연금개혁 논의가 결승선 앞까지 왔는데도 처리가 불발된 것이다. 모수개혁은 보험료를 얼마나 낼지(보험료율), 노후에 얼마나 받을지(소득대체율) 등 주요 변수만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여야는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는 데 합의했지만, 소득대체율에 대해 국민의힘은 43%, 더불어민주당은 45%를 주장해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이후 여당은 44%의 절충안을 제시했는데,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이를 전격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모수개혁만이라도 처리하자고 주장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난색을 표했다. ‘소득대체율 44%안’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각종 특수직역연금을 통합 구조개혁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21대 국회에서의 처리를 거부했다. 추 원내대표는 27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이틀 남은 21대 국회에서 시간에 쫓겨 밀어붙이지 말고 22대 국회에서 진짜 연금개혁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윤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도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연금개혁에 대한 질의에 대해 “21대 국회에서 조급하게 하지 말고 22대 국회로 넘기자”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윤 정부의 개혁 의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7일 논평을 내고 “‘연금개혁은 하루가 급하다, 정쟁거리가 아니다’ 이는 모두 윤 대통령께서 해왔던 말씀”이라면서 “그런데 대통령과 여당이 갑자기 22대 국회로 미루자고 한다. 하루가 급하다면서 22대 국회로 미루자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다른 헛구호처럼 연금개혁도 ‘거짓말’이었나”라고 꼬집었다.

문 정부에서의 연금개혁 실패 과정과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는 모양새다. 문 정부는 임기 초반 연금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정부와 국회가 실무 작업에 착수했다. 4개의 모수개혁안을 제시했지만, 문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코로나19 대유행 등 국민 여론에 부담을 느껴 개혁안 도출에 실패했다. 

문 정부에서 청와대 사회수석비서관을 지내며 연금개혁 논의를 이끌었던 김연명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장은 27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문 정부 당시엔 코로나19 유행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야당도 협조적으로 나오는데 정부·여당이 나서서 반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22대 국회로 넘어가면 윤 정부에서 연금개혁 추진이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고도 전망했다. 김 위원장은 “22대 국회로 넘어가면 공론화 결과 등이 참고는 될 수 있겠지만, 강력한 구속력은 떨어질 것이다. 약 25억원의 혈세를 쏟아부으며 했던 것을 똑같이 또 반복해야 한다”며 “정부 여당이 지금과 같은 태도를 보이면 연금개혁이 또 5년 늦춰지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도 “모수개혁을 먼저 처리한다고 해서 구조개혁을 못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상 별개의 사안”이라며 “구조개혁을 병행해야 한다는 여당 주장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이어 “22대로 미룬다고 특별한 묘안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금 논의되는 모수개혁안도 완벽하진 않지만 21대에서 처리한 뒤 22대 국회에서 더 진전된 논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도 이날 성명을 내고 “구조개혁이 같이 논의돼야 모수개혁이 의미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말장난에 불과하다”라며 “공론화까지 거쳐서 결론이 내려졌는데 또 다시 어떤 구조개혁을 논의한다는 것인가. 방안도 없으면서 구조개혁 운운하는 것은 기만이자 개혁을 방해하는 반(反)개혁행태”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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