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내년 말까지 원유 감산을 연장한다고 밝혔으나, 여전한 유가 하락 압력과 글로벌 수요 침체로 정작 정유업계는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에 놓였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오만·UAE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으로 구성된 OPEC+는 지난 2일(현지시간) 사우디에서 장관급 회의를 열고 당초 올해 말까지였던 하루 366만배럴 규모의 감산 정책을 2025년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일부 회원국이 지난해 말 합의한 하루 220만배럴 감산 조치도 기존 이달 말 종료에서 9월 말까지로 연장됐다.
감산은 통상 유가 반등을 위한 정책이다. 국제유가는 지난 4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 지정학적 우려에 따라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90달러선까지 올랐다가 꾸준히 하락해 최근 80달러선 초반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87달러까지 솟았던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도 지난 6일 기준 75.55달러까지 내려왔다.
유럽중앙은행(ECB)이 2019년 이후 처음으로 금리인하에 나서면서 그나마 최근 유가가 소폭 상승했으나, 미국 셰일가스 시추업체의 생산량 급증, 미국·중국 등 글로벌 주요 시장의 경기 침체 등 여파로 OPEC+의 의도와는 달리 유가 하방 압력이 거센 상황이다.
실제로 석유 수요에 영향을 주는 미국의 경제 지표는 낙관적이지 못하다. 최근 美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5월 제조업 지수는 기준선 50을 밑돌았다. 향후 경기를 낙관하는 기업들이 절반에 못 미쳤다는 의미다. 비슷한 시기 美 노동부가 공개한 4월 구인·이직실태조사(JOLST)에서도 미국 기업들의 구인 규모가 806만명에 그쳐 2021년 2월 이후 3년여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유가 고저(高低)와 관계없이 석유 수요가 부진하면서 정유업계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도 동반 하락세다. 정제마진의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지난달 말 배럴당 1.86달러로, 올 1분기(7.3달러) 대비 급락했다. 통상 정제마진 손익분기점은 4~5달러 수준이다.
지난해 대부분 적자를 기록하다 올 1분기 반등 흐름을 보였던 정유업계는 다시 주춤하는 모양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올 2분기 영업이익 3760억원을 기록하며 지난 1분기(6247억원) 대비 약 40%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나머지 주요 정유사의 2분기 실적 예상치도 1분기 호조세를 이어가기엔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제마진이 약세일 때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수요 위축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미국 등 OPEC+이 아닌 국가에서 원유 생산량이 늘고 있고, 글로벌 경제 상황도 유가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불확실성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