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의협)가 오는 18일 총궐기대회를 열고 집단 휴진에 나서겠다고 예고하면서 동네 병원들의 참여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개원의들 사이에서 대정부 투쟁 열기가 뜨겁긴 하지만, 정부가 입는 타격 없이 환자 피해만 양산할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의협은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린 ‘의료농단 저지 전국의사대표자대회’에서 18일 하루 ‘전면 휴진’을 선언했다. 휴진 철회 조건으로 2025학년도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 절차 중단, 전공의 행정처분 취소 등을 내걸었다. 의협은 하루 휴진하면서 총궐기대회를 개최하고 이후 일정은 정부 입장 변화를 지켜본 뒤 다시 논의해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의사대표자대회 종료 직후 브리핑을 열어 “휴진 목적은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절차를 멈추게 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입장 변화를 보이면 대규모 진료 휴진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9일, 20일까지 총파업이 지속될지 여부는 정부에 달렸다”며 “정부가 의사를 악마화하고 잘못된 정책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면 집단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협은 이번 집단 휴진 투표자가 7만800명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라고 했다. 투표 참여자를 직역별로 보면 개원의 2만4969명, 봉직의 2만4028명, 교수 9645명, 전공의 5835명, 기타 6323명이다. 이 중 6만4139명(90.6%)이 강경 투쟁을 지지했고, 5만2015명(73.5%)이 단체 행동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실제 집단 휴진에 나서면 이번이 역대 4번째 의료 총파업이 된다. 의협은 2000년 의약분업, 2014년 원격의료, 2020년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총파업을 벌인 바 있다.
그러나 높은 투표율이 실제 휴진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2020년 파업에서 개원의 참여율은 10%에 그쳤다. 자영업에 가까운 개원의들은 경영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역 주민이 주로 이용하는 동네 병원 특성상 지역 여론을 무시할 수도 없다. 실제 2020년 집단 휴진을 결의했을 당시 일부 맘카페에선 지역별 휴진 병원의 명단이 공유됐고, 해당 병원을 이용하지 말자는 운동이 벌어졌다.
정부의 대응 조치도 부담이다. 정부는 전국 개원의에 진료명령과 휴진 신고명령을 내리고, 휴진율이 30%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면 진료거부 예고일 하루 전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계획이다. 진료거부 예고일인 18일에는 현장을 점검해 업무개시명령 이행 여부를 확인하고, 위반 의료기관들에 대해선 행정처분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의협은 앞서 지난 4월1일 개원의들의 진료 축소(주 40시간 이내)를 통해 집단행동에 나섰지만 의료현장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이번에도 집단 휴진 파급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2020년 파업 때와 지금은 분위기나 양상이 달라 쉽게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20년에는 전공의가 주축이 돼 파업을 이끌었지만 이번 의료공백 사태에선 전공의들이 두문불출하고 있어 선배 의사들이 전면에 나서 파업을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서울 노원구의 내과 A원장은 “휴진에 대한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18일 집단 휴진에 참여할 예정이다. 주변에서 파업은 당연하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이렇게 하려고 현 의협 집행부를 뽑은 면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의료공백 사태로 인해 의사들이 국민에게 많은 미움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골 환자의 이탈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며 “환자들에게 휴진에 따른 안내 문자를 발송할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서울 은평구 정신건강의학과 B원장은 하루 휴진에 동참하지만 지속적 파업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B원장은 “사태가 장기화되면 개원의들도 부담이 커진다”라며 “휴진 관련 환자들의 문의가 이미 많이 들어오고 있다. 안내 문자를 보내며 안심시키고 있지만 우리도 걱정스럽다”고 털어놨다. B원장은 또 “우리 병원은 개원한 지 오래됐고 동네에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하루 휴진한다고 해서 환자들이 찾지 않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며 “개원한지 얼마 안 된 의사들은 휴진 참여를 망설이는 것 같다. 파업이 과연 정부의 의지를 꺾는 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부연했다.
집안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아야 하는 병원도 있는데 그런 곳들까지 진료명령이 내려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개원의도 있다. 경기 고양시 이비인후과 C원장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다. 17일에 아내 수술이 잡혀있어 간호를 위해 일주일 내내 휴진한다”며 “어쩔 수 없이 병원 문을 닫는 경우인데 사정을 설명해도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명령 위반에 따른 불이익을 각오하고 있다”고 전했다.
환자 불편과 피해가 우려된다고도 했다. C원장은 “이비인후과는 급성기 환자가 대부분이고 응급 상황이 종종 생긴다. 아침에 병원으로 출근하면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토하고 있는 환자를 3~4명씩 본다”면서 “어지럼증 환자는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잘 받아주지 않는다. 동네 병원들이 다 문을 닫아서 갈 데가 없으면 이런 환자들은 정말 큰일이 난다”고 짚었다.
의협의 결정에 불만을 갖는 의사도 적지 않다. 서울 중랑구의 신경과 D원장은 “입원환자를 살펴야 해서 휴진하지 않는다. 하루 휴진한다고 해서 정부에 무슨 타격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하루하루 치열한 병원이 있고 당장 치료가 급한 환자도 많다. 의협의 선택을 마냥 지지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