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 넘게 이어지는 의정갈등 상황에서 국회의 역할이 실종됐다. 22대 국회 원구성을 위한 여야 간 협상은 진전이 없다. 의료공백 사태 해결방안을 논의해야 하는 보건복지위원회도 고전하고 있다. 여야가 정쟁에만 몰두하는 사이 집단 휴진 등 의사들의 단체 행동은 강경해지고 환자 피해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태 해결을 위해 여야 합치 속에 국회가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국회에 따르면 이날 의료 현안 긴급질의를 위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8일 국회에서 환자단체와 간담회를 진행하고 여당인 국민의힘과 보건복지부의 상임위 참석을 요구했다. 간담회에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등 4개 단체가 참석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환자들은 전공의 집단 사직 및 의대 교수 집단 휴진으로 121일 동안 계속되고 있는 의료공백 장기화 사태의 빠른 종결과 재발 방지를 원한다”고 말했다.
간담회 직후 복지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정부와 여당 측에 전체회의에 참석하라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현재 여야는 상임위 구성을 놓고 날선 대립을 이어가고 있어 정부와 여당 모두 전체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전망이다. 의원들은 “전체회의에서 정부가 국회법에 따른 출석 요구를 거부한다면 향후 청문회를 추진하고 증인으로 출석을 추가적으로 요구할 수밖에 없다”며 “동행명령권 발동과 불출석 등의 죄로 고발하는 등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당을 향해선 “용산 거부권만 믿고 장외에서 국회 상임위 시늉만 하겠다는 꼴”이라며 “용산 눈치가 보여 기어이 상임위에 출석하기 싫다면 차라리 국회의원직을 내려놓으라”고 전했다.
여당은 “갈 길 바쁜 정부 발목 잡기”라며 민주당을 비판했다. 정광재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에서 “지금은 정부와 정치권이 민심을 받들어 힘을 모아야 할 때”라며 “복지부 장·차관을 국회로 불러 의대 증원 결정 과정에 대해 따지겠다며 벼르는 것은 커지는 의료공백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쪽 국회’ 상황 속 여야 의정갈등 풀이 ‘동상이몽’
‘반쪽 국회’ 상황 속에서 여야 복지위원들은 의료공백 사태를 해결해 보겠다고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협치가 아닌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해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소속 야당 복지위원들은 서울대병원 집단휴진 하루 전날인 16일 서울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서울대병원 집행부와 현장 간담회를 갖고 의정갈등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바로 다음 날 인요한 국민의힘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여당 복지위원들이 김영태 병원장을 만났다.
김 병원장과 1시간가량 진행된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 앞에 선 인 위원장은 의료공백과 의정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야당과 협조할 뜻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문제는 한 당에서 해결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라고 강조했다. 의사 출신인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가 사태 해결을 위한 조치들을 차질 없이 이행하는지, 환자 진료에 문제는 없는지 당에서 챙겨보겠다”고 했다.
여당의 단독 행보는 계속됐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8일 서울시보라매병원을 방문해 이재협 병원장과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엔 인 위원장과 한 의원도 동석했다. 추 원내대표는 면담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야가 의료대란 문제 해결에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너무 앞서간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문제에 여야가 어디 있겠나. 함께 좋은 방안을 찾아서 정부와 함께 정상화에 노력을 기울이겠다”면서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현장 목소리를 경청하고 만약 정부 여당이 빨리 문제를 해결하면 야당도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와 의료계에 중재안을 제시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엔 “지금은 현장에 계신 분들로부터 애로사항이나 건의사항을 경청하는 과정이다”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전국 병·의원 집단 휴진을 불법 진료거부로 규정하고, 대한의사협회의 집단행동에 유감을 표했다. 윤 대통령은 18일 국무회의에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책무가 있는 만큼 환자를 저버린 불법행위에 대해선 엄정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의료계 압박, 사태 해결 도움 안 돼”
의사 출신인 국회 복지위 전·현직 의원들은 사태 해결을 위해선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대형병원들의 전면 휴진 움직임이 커지는 상황에서 지금 같이 여야가 협치를 이루지 않고 시간만 허비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신현영 전 민주당 의원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의료대란을 일으킬 정도로 왜 무리하게 졸속으로 의대 정원 증원 결정을 했는지 야당이 밝혀야 한다. 이는 의료계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일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국회는 2026년도 의대 정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의료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정 간 입장차를 어떻게 좁힐 것인지, 정권에 구애받지 않는 의사 수요 체계 거버넌스 확립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 의원은 “여야 국회의원들은 의사들이 왜 국민들에게 욕을 먹어가면서 파업하고 휴진할 수밖에 없었는지, 전공의들이 자발적으로 사직해 왜 필수의료과를 안 하려고 하는지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면서 “이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결국 윤석열 정권의 실책으로 남는 것이다. 정부는 강력한 몽둥이로 의사들을 때려잡겠단 생각을 하지 말고, 의료계를 이해하고 존중의 자세로 대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도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여야가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이 의원은 “현재 의료공백 사태는 정부와 의료계 간의 자존심 싸움이 돼 어느 한쪽도 물러서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정치권이 의대 비대위를 만나든 교수협의회를 만나든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를 풀 열쇠를 쥐고 있는 건 바로 전공의와 의대생들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사태는 더 이상 병원이 하루 휴진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의정 갈등과 의사를 향한 국민적 감정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가는 게 제일 큰 문제”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와 국회,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