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소극장의 상징 ‘학전(學田)’을 약 33년간 운영해온 가수 김민기가 21일 향년 7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2일 공연예술계에 따르면 김민기는 하루 전 지병인 위암 증세가 악화해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이미영 씨와 슬하 2남,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1969년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한 김민기는 획일적인 수업 방식에 지쳐 펜을 놓고 가수의 길로 뛰어들었다. 1학년 1학기를 마친 뒤 고교⋅대학 동창인 김영세(현 이노다지안코리아 대표이사)와 포크송 듀오 ‘도비두’로 음악에 입문했다. 이듬해 명동 ‘청개구리의 집’에서 공연을 열며 ‘아침이슬’과 ‘가을편지’ 등을 작곡해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음악 활동 초기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던 김민기의 삶은 1972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민중가요를 가르치다가 경찰에 연행돼 고초를 겪으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흐른다. ‘꽃 피우는 아이’가 금지곡으로 지정되면서 활동에 제약이 걸리기도 했다.
음악 활동이 어려워지자 김민기는 고향인 전북 익산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 10.26 이후 잠시 음악활동을 재개했지만, 12.12 이후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잡자 다시 낙향했다. 1981년 전두환 정부가 관제 예술제인 ‘국풍81’에 참여하도록 회유했음에도 끝까지 참가를 거절한 일은 유명한 일화다.
1991년 김민기는 20년 넘게 달려온 가수의 길을 내려놓고 본격적인 연극 연출가로서 삶을 시작했다. 사비를 들여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개관하고 ‘지하철 1호선’을 공연했다. 1993년까지 음반을 발매했지만, 1994년 학전극장을 상주 공연장으로 하는 극단 학전을 창단한 뒤에는 무대 공연에만 집중했다.
한편 지난 3월 폐관했던 학전은 이달 17일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장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아르코꿈밭극장은 평소 어린이극에 관심이 많았던 김민기가 남겨놓은 마지막 유산으로 평가받는다. 김민기는 지난해 11월 생전 마지막 언론 인터뷰에서 “아이들도 온갖 고밍과 소망을 지닌 인격체”라며 “어른들의 잣대로 보지 말고 그 자체로 보아주었으면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