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떠나고 병원 디폴트 위기…“의료대란 우려”

의료진 떠나고 병원 디폴트 위기…“의료대란 우려”

기사승인 2024-07-28 06:00:04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수술실 안으로 의료진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전공의 집단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 장기화는 의료진과 병원에 지우기 힘든 멍을 남기고 있다. 반년째 전공의가 떠난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의료진은 지쳐가고, 병원들은 연쇄 도산 위기에 처했다. 의대생은 의사 국가시험 응시를 포기하고, 9월 하반기 수련 모집 지원은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 현장이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특단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조차 현재 시행 중인 9월 하반기 모집에서 사직 전공의들의 복귀가 저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사이 전문의 수련 과정을 내려놓고 일반의로서 동네 피부·미용 진료를 주로 보는 병·의원에 취업하려는 전공의들의 행렬은 줄을 잇는다. 전공의들이 하반기 모집에도 지원하지 않으면 아무리 빨라도 내년 6월 이후에나 수련을 재개할 수 있다. 지난 17일까지 전체 수련병원 전공의 1만3531명 중 사직 또는 임용 포기 처리된 인원은 7648명(56.5%)이다.

전공의 공백 속에서 병원을 지키고 있는 의료진은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일부 병원은 진료 축소에 들어갔다. 서울대병원·서울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서울대·분당서울대·보라매병원 교수 530여명을 대상으로 최근 1주간의 근무 강도를 조사한 결과, 주 72시간 이상 근무하는 교수는 42.3%에 달했다. 주 80~99시간 근무하는 교수는 18.2%, 주 100시간 이상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교수는 10.1%로 나타났다.

과중 업무를 버티지 못하고 이탈하는 대학병원 교수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강원대·충북대병원 교수 비대위에 따르면 충북대병원 교수 10명이 사직했고, 강원대병원 교수 23명이 사직했거나 사직할 예정이다. 교수 비대위는 지난 25일 성명을 통해 “현장 의료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지역의료를 살리는 방향의 정책을 만들고, 침몰 직전의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교수들의 마지막 절규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촉구했다.

내년 신규 의사 배출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복지부에 따르면 내년 의사 국시 실기시험 접수 인원은 364명에 불과하다. 가톨릭대·고려대·서울대·성균관대·연세대·울산대 의대 교수 비대위는 26일 보도자료를 내고 “대학병원의 수련 시스템이 한번 무너지면 가뜩이나 입지가 줄어든 바이탈 진료과의 전공의 지원이 급감하고, 수련 명맥이 끊기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의료진 이탈이 잇따르면서 응급실의 ‘365일 24시간’ 원칙은 깨지고 있다. 응급의료 담당기관 중 최상위에 속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들까지 이용을 제한하며 빨간불을 켰지만 정부는 다른 진료과의 인력을 대신 투입하는 방안을 제시할 뿐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뇌신경센터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이대로라면 전국 권역응급의료센터 44곳 중 10여곳은 폐쇄될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국가 응급의료센터를 총괄하는 중앙응급의료센터를 두고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에선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 중 1명이 이달 말 퇴사를 앞두고 있다. 의료원은 연봉 4억원을 제시하며 긴급 채용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 등 의료개혁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별다른 진척 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동안 병원들은 도산(디폴트) 위기에 처했다. 병원계는 경영 악화로 인해 올 여름 안에 문을 닫는 병원이 생길 것이란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의정 갈등이 본격화된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국립대병원 10곳의 의료수익 감소 추산액은 1조2600억원에 달한다. 5월 말 현재 이들 기관의 현금 보유액은 1420억7000만원으로, 적정 보유액 3999억원의 35.5%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립대병원들은 임시방편으로 운영자금을 차입해 사용하고 있다. 이들 병원이 차입한 운영자금은 총 7615억원으로, 이 중 50.2%인 3824억5000만원을 지난 5월 말에 이미 소진했다. 차입 한도 초과 시점마저 얼마 남지 않았다. 빠르면 7월, 늦어도 9~11월에 차입한 운영자금이 대부분 소진돼 도산 위기가 현실화될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대전과 충남 지역의 거점국립대병원인 충남대병원의 경우 ‘디폴트 선언’ 초읽기에 들어갔다. 병원 측은 대전 본원과 세종 분원의 의료진 및 행정직을 통합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막대한 규모의 차입금 상환 압박과 의료공백 등에 따른 경영난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세종충남대병원을 개원하면서 발생한 차입금 4200억원에 이자가 붙으며 상환이 버거운 상태다. 개원 4주년인 지난 16일까지 발생한 누적 손실만 2073억원에 달한다.

국립대병원들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간 겨우 버텨온 지방 사립대병원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손실에 의해 먼저 무너질 수 있단 우려가 팽배하다. 경기도 소재 한 중소병원의 A원장은 “기존에도 재정 상태가 좋지 못했던 수련병원들이 있다”며 “이 병원들이 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면 그 여파가 지역사회 전체에 미칠 수 있다”고 짚었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의 경증·중등증 환자 비중을 줄여 중증·응급 환자 중심으로 바꾸는 구조 전환 시범사업에 집중하며 의료공백 우려를 해소해 나간단 방침이다. 응급실 붕괴 우려에 대해선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추가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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