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출산 기피하지…한국은 인정 않는 ‘연금 양육 크레딧’

이러니 출산 기피하지…한국은 인정 않는 ‘연금 양육 크레딧’

기사승인 2024-09-27 06:05:03
연합뉴스

출산·양육으로 인해 경력단절을 경험한 상당수의 여성들이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연금 수급권을 보호하기 위해선 1년 지원에 그치는 출산 크레딧을 3년으로 확대하는 ‘양육 크레딧’을 도입하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금 장기가입률, 남성이 여성의 5.4배…“출산-경력단절이 주요 원인”

26일 국민연금공단의 ‘국민연금 공표통계’에 따르면 노령연금 수급자 수가 여성이 남성에 비해 눈에 띄게 적었다. 올해 5월 기준 노령연금 여성 가입자 수는 219만4916명이다. 남성 가입자 수 346만3589명에 비해 36.6%나 적다. 가입기간이 20년 이상인 수급자는 남성(89만2971명)이 여성(16만2473명)보다 약 5.4배 많다.

최근 5년간 여성의 연금 수급액은 남성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 받은 노령연금 수급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남성의 월 평균 수급액은 75만7414원인 반면, 여성은 39만785원에 그쳤다.

연금 가입률의 성별 간 격차는 35~39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성별 연금 격차의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4세의 경우 여성이 42만7000여명, 남성이 31만3000여명으로 여성 가입자가 더 많다. 그러나 25~29세에서는 남성이 101만여명, 여성이 93만여명으로 역전이 된다. 그 이후부터 격차가 커지는데, 35~39세에서는 여성 가입자 수가 남성보다 49만3000여명 가까이 적다.

출산·양육으로 인한 경력단절이 여성의 국민연금을 통한 노후 대비를 어렵게 만든 것으로 분석된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다미 보사연 부연구위원은 “출산·양육으로 인해 여성이 경력단절을 경험한다”라며 “노동시장에 계속 남아 일하는 여성의 일자리 상당수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독일·일본, 자녀당 3년 추가 인정…한국은 1년 지원이 끝

정부는 출산 등으로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이 보험료를 내지 않더라도 연금 수급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가입 기간을 추가로 인정해주는 ‘크레딧’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출산·양육과 관련해 가입 기간을 추가 인정하는 제도는 ‘출산 크레딧’이 유일하다. 둘째 아이부터 12개월씩, 셋째 아이부터는 18개월씩 인정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첫째 아이까지 12개월 추가 인정해 확대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이번 연금개혁안에 담았다.

다만 이 크레딧 제도가 출산·양육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연금 수급권을 보호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추가 인정 기간이 해외에 비해 너무 짧은 탓이다. 

게다가 독일, 스웨덴 등 해외 주요국은 출산 크레딧을 국가가 전액 지원하지만, 한국은 출산 크레딧 소요 재원의 30%만 국고로 부담하고, 나머지 70%는 국민연금 기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크레딧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선 보험료를 내는 다른 가입자의 부담이 커지는 구조인 셈이다.

자녀의 양육으로 인해 발생한 소득의 상실이나 감소에 대해 보상하기 위한 목적으로 ‘양육 크레딧’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도 있다. 전진숙 민주당 의원이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캐나다, 독일, 프랑스, 스웨덴,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은 양육 크레딧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독일은 자녀당 3년의 크레딧 기간을 한도 없이 인정해준다. 프랑스는 기본 2년의 크레딧에 자산 조건, 자녀의 연령 조건, 특정 가족급여 수급 여부에 따라 ‘추가 아동양육 크레딧’을 부여한다. 스웨덴은 최소 5년 동안 연금 관련 소득이 있었거나 장애연금 크레딧을 수급했던 부모들에게 자녀 출생 후 첫 4년 동안 크레딧을 인정한다. 일본은 육아휴직 크레딧 제도를 활용해 자녀당 3년을 추가 인정한다.

양육크레딧 제도를 도입해 출산·양육으로 인해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진다. 국민연금연구원의 ‘국민연금제도의 사각지대 현황과 대응방안’ 보고서는 “30대 이후 사각지대의 다수는 여성이고 특히 국민연금에서 원천 배제된 적용제외자의 62%는 여성 위주의 무소득 배우자였다”면서 “양육 크레딧은 이들 여성의 경력단절과 기여 공백을 채워 노후 소득을 보장할 가장 직접적·효과적 방법”이라고 짚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도 “출산 크레딧은 출산 행위에 대해서만 추가 가입 기간을 인정하기 때문에 1년 정도로 기간이 짧다”면서 “양육은 아이를 키우는 것이니, 양육 크레딧은 출산 이후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지원의 의미도 담긴다. 3년 이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출산 크레딧은 사회적 지원이기 때문에 전액 국고에서 부담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성은 출산으로 인해 경력단절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노동시장으로 재진입할 때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는 비율도 높아 여성의 연금 수급권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출산한다고 끝이 아니고, 양육도 필요하기 때문에 양육 크레딧으로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 관계자는 “현재 출산 크레딧에 양육 개념이 일부 포함돼 있다. 출산한 뒤 육아를 하는 기간 동안 가입 기간이 줄어드는 부분에 대해 출산 크레딧을 부여해 지원하는 것”이라며 “가입 기간 확대에 대한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고, 국가의 재정 여력과 지원 우선순위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크레딧의 국고 지원 비율과 관련해선 “재정당국과 협의 중”이라며 “소득대체율과 연동돼 있어 국회의 모수개혁 과정에서 논의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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