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LIG넥스원 ‘천궁-Ⅱ’ 수출 갈등…“정부 중재 역할 막중”

한화-LIG넥스원 ‘천궁-Ⅱ’ 수출 갈등…“정부 중재 역할 막중”

- 한국판 패트리엇 ‘천궁-Ⅱ’ 수출 두고 기업 갈등…방사청 중재 나서
- 이라크 ‘납기 단축’ 요구에 한화-LIG넥스원 이견 ‘팽팽’
- “국가기간산업 기반 중후장대 규모 확대…새로운 갈등에 정부 역할 중요”

기사승인 2024-10-03 06:00:05
공군 제1미사일방어여단 8120부대 작전요원들이 천궁-Ⅱ 발사대로 출동하고 있다. 공군  

국내 방산업체들이 ‘한국판 패트리엇’인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체계 ‘천궁-Ⅱ’를 이라크에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지만, 가격·납기 문제로 이견을 보여 방위사업청(방사청)이 중재에 나섰다. 중후장대 산업의 글로벌화 과정에서 정부·기관의 ‘중재자’ 역할이 더욱 막중해졌다.

3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방사청은 지난달 24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LIG넥스원 등 3사를 불러 천궁-Ⅱ 이라크 수출 관련 중재에 나섰다. 이에 대해 방사청 관계자는 “대화를 통해 조율해가고 있으며, 세부적이고 실질적인 부분에서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당초 이라크가 납기일을 당겨달라고 한 점에서부터 이견이 발생한 것이어서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다.

앞서 지난달 20일 LIG넥스원은 공시를 통해 이라크 국방부와 3조7135억원 규모의 천궁-Ⅱ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천궁-Ⅱ 포대는 8개 발사관을 탑재한 발사대 차량 4대와 다기능 레이더, 교전통제소 등을 갖췄다. 미사일과 통합 체계는 LIG넥스원, 레이더는 한화시스템, 발사대와 차량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각각 생산하게 된다.

군 당국이 개발 단계에서 유도탄 생산 업체를 주체계 업체로 결정함에 따라 LIG넥스원이 주체계 업체, 한화가 부체계 업체를 맡아 왔다. 기업 간 협의 후 주체계 업체가 대표 자격으로 발주처와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이라크에 앞서 체결된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 수출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번 이라크 수출 계약 과정에서 한화 측이 “납품 가격과 납기일에 대한 세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계약이 체결됐다”며 반발해 갈등이 빚어졌다. 반면 LIG넥스원 측은 “계약 체결 전에 가격·납기를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답변이 없었고, 지난 5월과 7월 각각 협의한 가격과 납기를 기준으로 계약했다”고 해명했다.

이번 계약에선 방공망 구축이 시급한 이라크의 ‘납기 단축 요구’가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 내에서는 지난 2월 계약한 사우디보다 일찍 천궁-Ⅱ를 공급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에 LIG넥스원 등 3사는 7월 긴급 회동해 설비 투자 확대를 통한 조기 납품 방안을 강구했고, 약 일주일 뒤 이라크와 재협상 일정을 잡았지만 한화 측이 난색을 표하며 불발됐다. 이후 LIG넥스원의 거듭된 설득 끝에 한화는 몇 가지 조건을 달고 앞서 열렸던 긴급 회동 결과를 재확인한 뒤 이라크와 재협상 일정을 다시 잡아 계약을 성사시켰다. 

다만 이 과정에서 LIG넥스원 측은 계약 체결 직전 한화에 협상용 견적을 요청했으나 회신이 없어 몇 달 전 협의한 가(假)견적을 기준으로 계약했다는 입장이고, 한화 측은 정확한 국내 기업 간 협상이 없었던 상황에서 계약을 체결했다는 입장이다.

방사청의 중재에서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사업 파트너인 양측은 기본적으로 ‘차질이 없도록 협의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기관이 좀 더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 간 계약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방위산업은 국가 간 계약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그 규모도, 영향력도 크다”면서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있어 변수가 많기 때문에, 계약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정부의 중재·조율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국가기간산업 기반의 중후장대 산업의 규모가 국제적으로 확대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갈등이 발생함에 따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인다. 최근 우주항공업계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약 9500억원 규모 차세대 발사체 사업 관련 IP(지식재산권) 소유권 인정 범위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차세대 발사체 개발 과정에서 만들어진 기술의 IP는 국책연구기관인 정부의 소유지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공동 개발에 참여했기 때문에 IP를 공동 소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간 하청 역할에 그쳤던 민간 기업이 ‘뉴스페이스’ 시대 속에서 파트너를 넘어 산업을 주도할 규모로 성장함에 따라 민-관 관계 재정립 등에 있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초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은 이와 관련해 “양측의 합의를 위해 적극 나섬과 동시에 제도적 개선 사항이 있는 살펴볼 것”이라며 “앞으로 이런 문제가 또 다른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제도적인 문제가 있다면 개선 과정까지 같이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김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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