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필의 視線] 영화 ‘전, 란’과 천안 ‘송유진의 난’

[조한필의 視線] 영화 ‘전, 란’과 천안 ‘송유진의 난’

기사승인 2024-10-13 20:50:12

 지난 1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전, 란’은 임진왜란이 배경이다. 노비출신 의병(강동원 분)을 주인공으로 전쟁이 빚어낸 사회변동을 그렸다. 

 노비를 포함한 천민들도 양반출신 의병장을 쫓아 왜적과 목숨 걸고 싸웠다. 여기까지가 전(戰)이다. 주인공은 이 공로로 노비 신분을 벗을까 기대 걸었지만 허사였다. 왕 자리 시키기 급급했던 선조(차승원 분)는 백성 환호를 받던 의병장도 제거했다. 크게 실망한 그가 조선 왕조에 란(亂)으로 맞서면서 영화는 끝난다.

 픽션이지만 많은 걸 시사했다. 선조는 전쟁 초기엔 의병 봉기를 원했지만 명 구원군이 오자 태도를 바꿨다. 의병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소강상태를 맞자 의병 해체에 들어갔다. 통제가 쉽지않은 무력은 왕에게 두려움이었다. 의병장은 관직을 내려 불만을 무마했다. 그러나 하층민 의병이 문제였다. 군량이 끊기자, 일부는 도적이 돼 민간을 약탈하기도 했다.

 1593년 말 충청도 직산(현 천안 직산읍)에선 역모가 꿈틀댔다. 출세가 막힌 양반 서얼들이 주모자였다. 의병이 해체되고 갈 데 없던 경성출신 31세 송유진이 직산 홍씨 일족에 의탁해 살았다. 아이들을 모아 동갑내기 홍근의 집에서 글을 가르쳤다.

 이 직산 홍씨 집에 불온(?)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침술사로 사족 관료집을 드나들던 40대 오원종, 인근 진천 출신으로 글께나 읽을 줄 알던 30대 김천수 등이다. 이들은 양반이 아닌 상민(常民)이었다. 직산, 천안, 아산을 중심으로 의병 모집을 빙자해 군사를 모았다. 직산 홍씨 일족이 대거 참여해 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은 관내 양반을 해치지는 않았다. 영화 ‘전, 란’에서 천민들이 양반 집(아들 박정민 분)에 분풀이하는 것과 달랐다. 직산의 이들은 단순한 도적이 아니었다.

 조선은 긴장했다. 이들이 하는 말들이 조정을 경악케 했다. “고통을 견디기 어려운 백성들을 위해 우리가 나왔다.”  “우리는 백성을 살리는 적(賊)이다.” 

 이들은 1594년 1월 전주에서 군사업무를 맡고 있던 세자 광해군에게 밀서를 보냈다. “임금(선조)이 죄악은 고쳐지지 않고, 당쟁은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부역은 무거워 민생이 불안하다.” 폭군을 몰아낸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까지 들먹였다. 저항 수준을 넘어선 체제 개혁을 노렸다.

 영화 ‘전, 란’서 보듯이 당시 경복궁 등 모든 왕궁이 불탔다. 1593년 10월 피난서 돌아온 선조는 임시 행궁에서 지냈다. 행궁 수비가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직산 역모 주모자들은 이를 간파하고 있었다.

 “군사 1000여 명을 데리고 경성 행궁을 포위한 후 ‘3일간 통곡’하며 임금 허물을 바로잡겠다”고 별렀다. 선조를 내려 앉히고, 광해군을 왕으로 만들려 했다. 당시 이웃 강국 명나라의 입장도 읽고 있었다. 선조를 무시하는 명 황제 칙서를 빼돌려, 가담자 모집에 활용했다.

 역모는 미수로 끝났다. 직산 홍씨 일족이 조정 회유책에 솔깃했다. 역모 가담을 불문에 붙이고, 높은 벼슬을 내리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다른 주모자 10여 명을 결박해 직산현 관아에 넘겼다. 이 과정서 선조에 의해 토정 이지함 서얼로 의병장이였던 이산겸이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

송유진의 난 무대였던 천안 직산 및 아산 일대. 1594년 1월 천안 양전산(현 직산 양당리 용와산)과 아산 음봉의 연암산에 반란군이 집결했다.

 이렇게 임진왜란 시기 조직적 반란이 직산에서 처음 모의됐다. 충절의 고장 충청도에서 역모가 잇따른 건 아이러니다. 2년 후인 1596년 부여 홍산에선 이몽학의 난이 일어났다. 거병까지 성공했다. 이 역모는 아산출신 홍가신에 의해 진압됐다.

 7년 전쟁으로 까발려진 무능함에도 조선 왕조가 유지된 건 무엇 때문일까. 충군(忠君)정신이 투철한 양반 중심의 봉건체제가 아직 튼튼해서다. 그걸 무너뜨리려 했던 두 역모 사건이 이 고장서 일어난 건 역사 발전적 측면에선 자랑스러운 일은 아닐까. 

조한필 천안·아산 선임기자
조한필 기자
chohp11@kukinews.com
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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