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이 확실시 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저가 의약품 도입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미국 진출 기회가 넓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6일(현지시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경합주(州)인 노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 펜실베이니아 등에서 잇따라 승기를 굳힌 2024 미국 대선 개표 상황을 지켜본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향후 미국에서의 연구개발(R&D), 수출 루트의 흐름이 바뀔 것으로 예상하고 대비에 나섰다.
업계는 ‘중국 견제’, ‘약가 인하’ 등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큼지막한 아젠다를 토대로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의 ‘미국 대선 시나리오별 한국 산업 영향과 대응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는 제약바이오 관련 공약으로 △개인 의료보험 선택 권한 강화 △약가 인하 및 국내외 제약사 경쟁 촉진 △의약·식품·화학 규제기관 간 유착 감소 등을 내놨다.
특히 트럼프 측은 간접적 약가 인하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집권 하에서 정부가 제조사와 약가를 협상하는 방식을 전개했다면, 트럼프 후보는 보상과 경쟁을 통해 자연스러운 약가 인하가 이뤄지도록 꾀한다.
트럼프 후보는 집권 기간이던 지난 2018년 약가 정책으로 △경쟁 강화 △낮은 가격의 의약품에 대한 인센티브 △본인부담금 경감 등을 밝힌 바 있다. 이번 대선 공약에도 제약사 간 가격 경쟁을 유도하는 안이 담겨있다. 경쟁 구도를 만들기 위해 주별로 처방약을 수입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방법도 추진할 방침이다.
업계는 이러한 트럼프 후보의 행보가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의 정책 방향에 비해 리스크가 적다고 보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 A씨는 “강력한 약가 인하 정책은 글로벌 제약사의 수익성을 악화시켜 R&D나 기업 투자를 저해한다”면서 “국내 제약사의 경우 신약 물질을 기술이전하거나 글로벌 제약사의 투자를 통해 신약 개발을 이어가기 때문에 해외 약가 인하 정책에 따른 타격이 크며, 미국 시장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매출에도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 제시된 약가 정책은 영향력이 미비하다는 점에서 매출이나 투자 흐름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중국 견제 기조와 맞물려 국내 기업들의 미국 진입 기회는 넓어질 전망이다. 트럼프 후보는 약가 인하를 위해 해외 저가 의약품을 수입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사용을 장려했다. 이에 따라 미국보다 가격이 저렴하면서 안전성 등 질이 높다고 평가받는 국내 의약품이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중국 바이오 기업 규제를 골자로 하는 ‘생물보안법’에 따라 중국 수입 의존도를 낮춘다는 관점에서 국내 위탁생산(CMO), 위탁생산개발(CDMO) 업체들의 반사 수혜가 기대된다.
다만 변수도 존재한다. 트럼프 후보는 지난 2020년 국제 가격 비교를 통해 최혜국(MFN)보다 낮게 메디케어 약가를 인하한다는 급진적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트럼프 후보는 또 ‘자국 우선주의’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공급망 및 통상 정책 강화를 피력하고 있기도 하다. 관세 및 수입 제한으로 모든 필수 의약품 생산을 미국에서 이뤄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필수의약품, 원부자재 수입을 제한하는 등 한국에 대한 통상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더불어 중국 원료를 활용한 한국 완제의약품의 경우 미국 수출 시 추가 관세가 붙거나 수출에 제한을 받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제약업계 관계자 B씨는 “트럼프 후보는 제네릭, 바이오시밀러 사용 촉진을 통한 시장 경쟁 강화 방침을 표한 바 있어 관련 국내 기업들의 기대가 높은 상황”이라면서도 “미국 내 산업 성장을 위해 공급망을 제한하면서 한국 등 타 국가들에 대한 압력을 늘릴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생물보안법 시행도 중국을 견제하는 것일 뿐 한국이 직접적인 수혜를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며 “결국 자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라고 했다.
정지은 산업연구원 신산업실 부연구위원은 “필수의약품 및 의료기기에 대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될 것에 대비해 국내 필수의약품 적정 재고 관리, 바이오시밀러 현지 시장 가격 개입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특히 바이오시밀러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특허와 기술 확보 등 경쟁력 제고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