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사면초가에 빠진 윤석열 대통령의 거취를 두고 논란이 거세다. 국회에선 이미 ‘탄핵 시계’가 돌아가고 있다. 탄핵 반대가 당론인 여당 내에선 ‘질서 있는 퇴진’의 구체적인 시기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야권은 즉각 사퇴 또는 탄핵 외엔 우회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총공세에 나섰다.
정치권에선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①대통령 탄핵 ②대통령 하야 ③질서있는 퇴진 ④대통령 2선 후퇴 ⑤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 ⑥대통령 구속 후 직무 정지 등이다.
야권은 반드시 윤 대통령 탄핵을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9일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이) 즉각 사퇴하거나 아니면 즉각 탄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말 전 탄핵안 통과를 목표로 ‘수요일 발의, 목요일 보고, 토요일 표결’을 매주 반복하며 여론전을 펼친다는 방침이다. 오는 11일 탄핵안을 재발의한 뒤 14일에 재표결에 나설 예정이다.
탄핵안이 본회의에 보고되면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 표결해야 한다.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될 경우, 윤 대통령의 직무는 즉시 정지되고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는다. 국회에서 의결된 탄핵안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가면, 헌재는 최대 180일 동안 사건을 심리하게 된다. 헌법 재판관 6인 이상 찬성 시 탄핵이 선고된다.

변수는 헌법재판관 9명 중 3명이 공석으로 ‘6인 체제’라는 점이다. 지난 10월17일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이 퇴임했으나 여야가 추천 인원수를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해 후임이 지명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상 심리 정족수가 7명이긴 하지만, 최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낸 헌법소원 가처분을 받아들이면서 6인 체제에도 심리를 할 수 있다고 헌재가 판단했다”며 “국회에서 (헌법 재판관 3인을) 선출하고, 인청을 거쳐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권한대행이 헌법 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느냐 논란이 일 수 있지만, 지금 추천하는 3인은 국회 몫을 선출하는 것으로 대통령 임명 권한은 요식 행위에 가깝다”며 “(임명을) 안 할 수 없다. 당연히 자동적으로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현재 여당은 ‘2선 후퇴’와 ‘질서 있는 퇴진’ 시나리오에 무게를 싣고 있다. 질서있는 퇴진이란 말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당시 등장한 말이다. 보수 진영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주장에 맞서 이같은 대응책을 내놨다. 탄핵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국 불확실성을 줄여주고 국정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여당의 논리였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지난 8일 “국무총리와 당이 협의해 국정을 운영하겠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으로 혼란을 최소화하겠다. 당내 논의를 거쳐 구체적인 방안을 조속히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2선 후퇴를 전제로 직을 유지하되, 퇴진 전까지 한 총리가 사실상 권한을 대행한다는 취지다. 국무총리와 여당 지도부가 협의해 국정운영 파트너로 나서는 것으로, 사실상 책임총리에 가까운 구조로 풀이된다.
다만 책임총리제는 국내법에 명시된 제도가 아닌 탓에 헌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직을 유지한 가운데 ‘사실상 직무 배제’가 가능한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군 통수권은 법적으로 위임되지 않아 직을 유지하는 이상 지휘계통이 불분명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윤 대통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표 수리 등 인사권을 행사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같은 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그 누구도 부여한 바 없는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와 여당이 공동 행사하겠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며 “대통령 권력의 부여도, 권한의 이양도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그 절차는 헌법과 국민주권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경고했다.

윤 대통령이 즉각 하야(下野)해 국무총리나 권한대행 중심으로 정국을 수습하는 방안도 있다. 윤 대통령이 하야할 경우 60일 이내 대선이 실시돼야 한다. 헌법 제68조 2항은 ‘대통령이 궐위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규정한다. 탄핵 절차를 밟는 것보다 빠르게 재선거가 치러질 수 있어,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낮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도 “여권 입장에선 대응 시간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당장 하야는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했다.
윤 대통령 앞에 놓인 또 다른 선택지는 ‘임기단축 개헌’이다. 이는 5년 단임인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중임으로 바꾸자는 게 핵심으로, 오는 2026년 6월 지방선거 때 조기 대선을 함께 치르자는 시나리오다. 임기단축 개헌이 현실화된다면 윤 대통령의 퇴진 시기는 밀리게 된다. 해당 방안은 친윤계 중진 의원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비상의원총회 도중 나와 기자들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조기 대선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체포·구속 등에 따른 직무정지 가능성도 일각에서 거론된다. 현직 대통령은 재직 중 형사 소추를 받지 않지만, 내란과 외환의 죄는 예외다. 이론적으로 형사 소추를 위한 체포, 구속이 가능하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실제 검찰과 경찰은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법무부는 9일 공수처가 윤 대통령에 대해 신청한 출국금지를 받아들였다. 현직 대통령이 출국금지 조치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헌법 제71조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국무총리 등이 권한을 대행토록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내란죄 혐의로 체포·구속될 경우, 고도의 법리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윤 대통령이 수사기관에 체포, 구속된다고 해도 곧바로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이 정지될 지에 대한 논란이 불붙을 전망이다. 보수 진영의 극심한 반발 등 또 다른 후폭풍도 예상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윤 대통령이 구속될 경우 국무총리가 그 권한을 대행할 가능성이 크다”며 “하지만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는다 할지라도 국정 혼란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덕수 총리 역시 내란 혐의로 고발을 당한 피의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행법상 대통령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내세울 수 있기 때문에 옥중지시가 가능한 구조”라며 “정치권 안팎으로 상당한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부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