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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이 지난해 공개매수로 취득한 자기주식 등을 전량 소각하는 의안을 내달 정기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해야 한다는 영풍·MBK파트너스 측 주주제안을 거부했다. 고려아연이 이사회에서 자사주 소각을 결의한 적 없으며 자사주를 소각하는 구체적인 시점과 소각 물량 등은 미공개 중요정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자, MBK는 고려아연이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며 반발하는 모습이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2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김상훈) 심리로 열린 의안상정 가처분 사건 심문에서 영풍·MBK와 고려아연은 자사주 전량 소각과 임시의장 선임 주주제안을 주총 의안으로 상정할지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다음 달 말 열릴 고려아연 정기주총을 앞두고 영풍·MBK 측이 제기한 가처분은 총 3건이다. 지난달 영풍의 의결권이 배제된 ‘임시주총 결의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과 당시 주총 결의로 선임된 이사들의 ‘직무집행정지를 구하는 가처분’, 그리고 영풍·MBK의 주주제안을 정기주총 안건으로 상정해달라는 ‘의안상정 가처분’ 등이다.
이 가운데 임시주총 결의 효력정지와 이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은 병합돼 지난 21일 심문기일이 열렸고, 의안상정 가처분 사건의 심문은 지난 24일 진행됐다. 최근 고려아연은 법무법인 율촌을 새 대리인으로 선임했으나 의안상정 가처분 사건에서는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여전히 고려아연의 법률 대리인으로 나섰다.
이 자리에서 고려아연 측 법률대리인은 “지난해 10월2일 이사회에서 (공개매수로) 취득한 자기주식에 대해 구체적인 소각을 결의한 것이 아니라 향후 장래에 취득할 자기주식에 대해서 소각할 계획임을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재판부가 ‘자기주식 소각에 대한 이사회 결의는 아직 없었다는 건가’라고 묻자 고려아연 측 대리를 맡고 있는 고창현 변호사는 “채무자(고려아연)는 자기주식을 소각하겠다고 일반적인 내용의 말은 한 적이 있으나 구체적인 시점과 물량에 대해서는 이사회를 아직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자기주식 소각과 관련해 이사회에서 논의를 할 것이고 소각 시점과 정도에 관한 정보는 미공개 중요 정보이기 때문에 이사회에서 결의가 되면 모든 주주들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에 MBK 측은 즉각 반발했다. MBK 측 법률대리인은 “이사회에서 자기주식을 소각할 예정이라고 결의한 사항은 이미 공시가 됐기 때문에 미공개 정보라고 얘기할 수 없다”면서 “지난번 자기주식 처분 금지 가처분 사건에서도 (고려아연은) 자기주식 처분 계획이 없고 소각은 예정돼 있으나 시점만 아직 결정이 안 됐다고 얘기했는데 또 말이 바뀌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측은 영풍·MBK가 제안한 주총 임시의장 선임 의안에 대해서도 평행선을 달렸다. 영풍·MBK 측은 “(주총 의장이) 정기주총에서 중립된 입장에서 객관적이고 공정·공평하게 의사진행을 할 것을 전혀 기대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고려아연 측 대리인은 “주총을 실제로 개최해 진행도 하지 않은 상태”라며 “채권자들(영풍·MBK)의 일방적 주장만으로 임시의장을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할 수 있는 요건이 갖춰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또, 신규 이사 선임과 재무제표 승인의 건 등 영풍·MBK의 나머지 주주제안은 의안으로 상정하기로 했으나, 영풍·MBK는 고려아연에 대한 신뢰가 없어 인용 결정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고려아연은 의안으로 상정하기로 했으니 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이달 28일을 심문 종결일로 정하고 추가 서면을 받기로 했다. 결정은 다음 달 10∼12일 사이에 열릴 이사회 일정을 고려해 적절한 시기에 나올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