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환경 보호구역 사각지대 ‘전자담배점’…합성니코틴 규제 시급

교육환경 보호구역 사각지대 ‘전자담배점’…합성니코틴 규제 시급

학교 인근 액상담배 점포 우후죽순…무인 전자담배점도 6개월來 4배↑
학부모·교사·전자담배협회, 학교 인근 ’합성니코틴’ 매장 규제 목소리
액상담배에 쓰이는 합성니코틴, 법적으로 담배 포함 안돼…개정 시급
“국회, 청소년 건강 보호권 위해 조속히 합성니코틴 담배에 포함시켜야”

기사승인 2025-04-24 06:00:10
인근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이 23일 서울 마포구 염리동 소재 무인 전자담배 판매점 앞을 지나가고 있다. 김건주 기자

최근 전자담배 시장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초중고 주변에 전자담배 판매점이 많아지며 청소년 흡연 접근성을 높인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학교 주변은 ‘교육환경 보호구역’으로 담배를 판매할 수 없음에도 학교 뒷편·등하굣길 등에 전자담배점이 들어서며 규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학교 인근에 담배 판매점이 생기는 것은 이들이 판매하는 ‘액상담배’가 법적으로 담배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염리동 6호선 대흥역. 2번 출구를 나와 직선으로 5분 정도 걸어 가자 보라색 네온사인과 ‘전담’이라는 글자가 크게 들어간 간판이 나왔다. 이곳은 가게를 운영하는 직원 없이 자판기와 키오스크로만 운영되는 24시간 무인 전자담배 판매점이었다. 해당 점포 내부에는 인기 전자담배 액상을 소개하는 순위 광고나, 방문객들이 쉽게 이용하도록 메신저 오픈채팅 QR코드 등의 인쇄물이 붙어 있었다.

기자가 방문한 해당 점포 주변으로는 마포구 동도중·서울디자인고와 용강초가 위치했다. 특히 조금 더 멀리에 있는 서울여중·여고 학생들도 등하굣길에 지나다니는 대로변에 점포가 있어 인근 학교 학생들의 경우 접근성이 높았다. 네이버 지도 기준 해당 점포와 인근 학교 경계의 직선거리를 재면 90~150m 정도로 나타났다. 실제로 하교시간대 이곳을 지켜본 결과 5~6명씩 모인 학생들은 이곳을 지나 버스정류장이나 역으로 이동했다. 일부 학생들은 해당 점포를 지나며 “너 한 번 들어가봐”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학교 주변에 들어선 전자담배점은 이곳뿐만 아니다. 같은 지역의 염리초 근처에도 직선거리로 115m정도 떨어진 곳에 전자담배 판매점이 들어섰다. 노원구 노원중·신상중 사이에도 150~200m 안쪽에 전자담배 판매점이 자리했으며 동대문구 청량초, 강남구 논현초, 영등포구 당중초 인근에도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멀지 않은 위치에 전자담배 점포들이 들어서 있었다.

전자담배 판매량은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이달 발표한 ‘2024 담배시장 동향’에 따르면 액상형 전자담배를 포함한 ‘궐련형 전자담배 등’의 판매량은 같은 기간 6억6000만갑으로 전년대비 8.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담배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 2017년 2.2%에서 지난해 18.4%까지 상승했다. 특히 서울시 조사 결과 지난해 4월 11곳이었던 무인 전자담배 판매점은 같은해 9월 기준 44곳으로 증가해 약 6개월 만에 4배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지난해 1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연구 용역 최종 결과에서도 유해물질(발암성·생식독성 등) 69종의 잔류량을 분석한 결과, 천연니코틴 원액에서는 45개 항목에서 1만2509mg/L가 검출됐다. 그러나 합성니코틴 원액에서는 41개 항목에서 2만3902mg/L가 나왔다.

23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논현초 인근에 전자담배 판매 광고가 게시돼 있다. 김건주 기자

원칙적으로는 누구든지 보호구역에서는 담배 판매나 담배자동판매기 설치 등의 행위를 할 수 없다. 교육환경법상 ‘교육환경 보호구역’에 따르면 학교경계나 학교설립예정지 경계에서 직선거리로 200m 내에서는 담배 판매는 금지 행위에 해당한다. 이를 어길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학교 인근의 전자담배 판매점들은 대부분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이들이 판매하는 액상 담배는 ‘합성 니코틴’을 이용한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현행 담배사업법에 따르면 담배는 ‘연초의 잎’으로 제조한 제품만 해당된다. 액상을 가열하는 합성니코틴 제품은 법적으로 담배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판매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자 지역 학부모·교사 단체, 전자담배 단체 등도 학교 주변 전자담배 매장 규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마포구 지역 학부모 온라인 카페에서는  “액상형 전자담배의 경우, 화학반응을 통해 합성 니코틴이 제조돼 법적으로 담배로 분류되지 않아 규제 공백이 생겼다”며 “학교 주변 교육환경보호구역에서의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한다”는 탄원서를 공유하고 있다.

중등교사노동조합도 지난 15일 성명서를 내고 “청소년들이 가짜 신분등 등을 이용해 전자담배를 손쉽게 구매하는 사례가 계속 확인되고 있다”며 국회와 정부, 지자체에 실절적인 청소년 보호를 촉구했다. 전자담배협회 총연합회도 “협회 및 액상형 전자담배를 옹호하는 그룹조차 액상형 전자담배가 무분별하게 청소년에게 노출되거나 권장되는 것은 절대로 바라지 않는다”며 “이는 어떠한 법과 시장의 논리보다 우리 스스로가 양심을 가지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여야 하는 대한민국의 성인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제20차(2024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 중 액상형 전자담배 현재 사용률. 질병관리청

실제로 질병관리청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청소년의 일반 궐련담배(3.6%)와 액상형 전자담배(3.0%) 사용률은 유사했다.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이보다 낮은 1.9%로 조사됐다. 이에 액상형 전자담배를 통한 청소년들의 흡연 접근을 억제하기 위해 관련 규제가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에서도 합성니코틴을 담배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계류중이다. 다만 해당 법안 개정을 담당하는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는 법안 통과가 무산됐다.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소위원회 위원장인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청소년 건강을 지키는 것도 있지만 억울한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청소년 단체 등에서는 국민 건강증진을 포기하고 소수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진환 청소년지킴실천연대 사무총장은 “최근에는 전자담배를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무인판매점인 이른바 ‘성지’에 대한 목록도 청소년 사이에 돌고 있어 흡연 조장이 가속되고 있다”며 “우선순위인 청소년 건강 보호권을 위해 합성니코틴을 담배로 규제하고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건주 기자
gun@kukinews.com
김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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