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경찰이 시너로 불이 날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하고도 지난 20일 용산 참사를 낳은 진압작전을 실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특히 건물 3∼4층이 폐쇄된 것을 파악하고도 옥상에서부터 진압을 시작해 토끼몰이식 작전을 펼쳤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진압작전 문서에 최종 서명한 사실도 드러났다.
민주당 김유정 의원이 21일 서울경찰청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1·20 전국철거민연합 한강로 3가 남일당 빌딩 점거 농성장 진입계획’에 따르면 경찰은 “유류화재에 소화가능한 소화기와 소화전을 미리 준비한다”는 진입대책을 세웠다. 시너로 불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경찰은 위험물로 ‘20ℓ짜리 시너 60여개’와 ‘화염병 120여개’를 지목해 화재시 규모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진압작전 문서는 A4 용지 7장으로, 경력투입의 법적근거와 예상 상황, 진입대책, 경력배치 등을 상세히 기록했다. 특히 김 청장의 친필 사인이 뚜렷이 남아 세부 진압작전까지 그의 승인 하에 짜여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참사 전날 저녁 회의자료로 보인다.
경찰은 건물 3∼4층의 통행이 불가능했음도 알고 있었다. 문서에서 “철거민들이 쇠파이프를 10여㎝ 간격으로 용접해 계단을 폐쇄했다”고 적었다. 옥상에서 진압작전을 시작하면 철거민들이 계단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점을 인지한 셈이다. 퇴로를 열어두지 않고 무리한 진압을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문서에는 “분신에 대비해 소방차량을 배치하고 개인별 소화기를 최대한 확보한다”는 계획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경찰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전국철거민연합 중앙회 회원 110여명이 주위에서 지원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외부세력 차단을 위한 작전을 세웠다는 점도 눈에 띈다.
경찰은 아울러 경찰특공대원을 실어 나를 컨테이너 이동용 지게차와 크레인 2대와 소방고사다리차 등은 반드시 확보해야한다고 모의했다. 경찰은 문서에서 사전 예행연습에 만전을 기울여야 한다고 적었으나 작전 수립 뒤 12시간도 안돼 진압이 이뤄져 연습시간은 사실상 없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