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구제금융 무산=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1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긴급 회담을 갖고, 동유럽의 경제위기에 대해 논의했지만 ‘무작정 도와줄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초 쥬르차니 페렌츠 헝가리 총리는 동유럽 9개국(폴란드·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불가리아·루마니아)을 대표해 최대 3000억유로(약 581조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우선 1900억유로의 특별펀드 조성을 제안했다. 페렌츠 총리는 “동유럽 경제에 대규모 구제금융이 지원되지 않으면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를 맞게 될 것”이라며 “지원이 성사되지 못할 경우 동서를 가르는 새로운 ‘철의 장막’이 드리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EU 회원국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구제 방침도 사례별로 강구돼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결국 특별펀드 조성은 끝내 무산됐다.
그렇지만 서유럽이 장기적으로 동유럽을 무조건 모른 척 할 수만도 없는 형편이다. 동구권의 최대 채권국인 오스트리아(2776억달러)를 비롯해 독일(2199억달러) 이탈리아(2196억달러) 등이 동유럽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서유럽 입장에선 자국의 경제도 살리면서 동유럽의 디폴트도 막아야 한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는 서유럽의 고민이 깊어가는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동서로 분열되는 유럽=EU 정상들은 이날 ‘보호주의 배격’이라는 큰 틀에는 합의했으나 동서간 의견 차이를 드러냈다. 서유럽의 부국 독일과 프랑스는 동유럽 구제금융안을 거부하는 대신 자국 산업에 대한 추가 지원을 역설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EU의 현 정부보조금 제한 규정이 너무 엄격한 만큼 시대에 맞게 재개정돼야 한다”며 자국의 자동차산업에 대한 추가 지원을 요구했다.
동유럽 국가 중 비교적 재정상태가 좋은 폴란드도 헝가리에 등을 돌렸다. 도날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동유럽 각국간 연대를 과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럽 전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한발 물러섰다. 유럽상공회의소의 아르날도 아브루치니 회장은 “이번 회담은 경제 위기 해결을 위한 어떤 구체적 방안도 마련하지 못한 비생산적인 정치적 쇼였다”며 “회원국간의 우려스런 경제적 협력의식 부재만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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