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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10일 오후 6시, 서울 영등포 중앙장례식장은 통곡소리로 가득찼다. 전날 서울 서강대교 인근 밤섬 모래사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가던 한 남성에게 발견된 20대 청년 정모(29)씨의 빈소였다. 정씨는 잇따른 취업 실패 때문에 20대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전했다.
정씨는 1998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정씨 부모는 "시골 학교에서 상경해 대학을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러움을 한몸에 샀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가정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정씨는 아르바이트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군 제대 후 정씨는 등록금을 내지 못해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다. 학업을 계속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2006년에 정씨는 학교를 그만뒀다. 이후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전남 담양)으로 내려갔지만 취직이라도 해야 겠다는 심정으로 지난해 또다시 서울로 옮겼다.
과거 다녔던 대학 인근 고시원에 숙소를 마련한 정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여렵사리 생활했다. 하지만 취업 현실은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정씨에게 냉혹하기만 했다. 당시 정씨는 미니홈피에 "내인생, 나, 어쩌다 요모양 요꼴"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정씨의 형은 "집안형편이 어려워 힘들게 들어간 학교도 그만둬야 했고, 취직도 쉽지 않자 동생이 많이 우울해했다"고 전했다.
정씨가 바깥 출입을 꺼리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게임으로 보내면서 정씨는 점점 더 폐쇄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매달 지불했던 20여만원의 고시원비도 제때 내지 못해 방문 앞에는 빨간 딱지가 붙었다.
정씨는 지난 1월 초 고시원 방을 깨끗하게 청소한 뒤 휴대전화 등 소지품을 책상 위에 남겨둔 채 가족과 연락을 끊었다. 정씨의 형은 시간이 지나도 정씨에게 연락이 없자 가족과 상의한 뒤 지난 1월31일 성북경찰서에 가출신고를 했다. 하지만 끝내 정씨는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다.
취업 문제 등으로 20대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1월 대전 복수동의 한 아파트에서 김모(25)씨가 목을 매 숨졌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전남 전주시 전동의 한 주택에서 대학생 민모(22·여)씨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은 잦은 취업 실패로 좌절해 이같은 선택을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15∼29세 청년 실업자는 35만6000명. 이 중 취업준비생을 포함하면 '청년백수'는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취업 준비생의 절반은 스트레스 탓에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지난해 온라인 리크루팅업체 잡코리아에서 20대 구직자 108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구직자의 47.3%가 '취업 스트레스로 자살 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이홍식 정신의학과 교수는 "반복된 실패로 좌절하면 자살 충동으로 이어진다"며 "취업 외에 자신의 가치를 다각도로 바라보는 마음가짐을 갖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청년들이 좌절과 불안을 이겨낼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등 국가적 차원의 관심과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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