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경제]
지난 27일 오전 6시30분쯤 울산시 신정동 교보생명 앞 도로 건너편. 일자리를 구하려는 인부 10여명이 모여 있었다. 2시간 넘게 구인 업체를 기다리던 이들은 9시가 돼 가자 "오늘도 공쳤네"라며 뿔뿔이 흩어졌다.
울주군 온산읍에서 막노동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왔다는 오모(58)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한 달에 15일 정도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한 달에 5일도 일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날 밤 10시 울산시 삼산동 롯데호텔 앞에는 택시 10여대가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만 30년째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는 최모(55)씨는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SK에너지 등 울산을 떠받치는 세 업체가 다 어렵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요즘은 수입이 40% 가량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자동차 부품 공장이 밀집한 효문공단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현대차 파업 때 외에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던 곳이다. 차량 내장재를 납품하는 한 업체 사장은 "지난달 하청 물량이 줄어 일부 비정규직 직원을 쉬라고 했는데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안보여 인력을 더 줄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1인당 지역총생산(GRDP)이 4297만원이나 되는 등 전국에서 경기가 가장 좋은 도시, '부자 도시' 등으로 불리던 울산이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추락하고 있다. 29일 통계청에 따르면 2월 말 현재 울산시의 실업률은 5.1%로 대구와 함께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이는 전국 평균 실업률(3.9%)에 견줘 1.2%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울산의 실업률이 5%대에 올라선 것은 2001년 3월 이후 처음이다. 울산의 실업률은 지난해 10월 5년여 만에 처음으로 4%대에 진입했었다.
통계청 정인숙 고용통계팀장은 "울산은 그동안 전국 도시 가운데 실업률이 가장 낮았는데 지난해 4분기 이후 고용 악화가 뚜렷해졌다"며 "현대차 등 대기업들은 아직 괜찮지만 수출과 내수 감소로 하청업체를 중심으로 고용 조정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울산의 추락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이 지역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위치 때문이다. 울산은 자동차와 조선, 석유화학 등 한국 제조업의 핵심 업종이 포진한 도시다. 이런 점에서 작게는 수출경기, 크게는 우리 경제의 부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는 분석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은 1999년 초 6%를 넘었던 울산의 실업률은 수출이 급신장하면서 그해 하반기부터 4%대로 급락했었다"며 "이번 경제위기가 단기간에 극복돼 경제지표가 당시처럼 'V'자 모양을 보일지, 'U'자나 'L'자의 중장기 침체를 보일지는 향후 울산의 각종 경제지표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배병우 기자,
울산=조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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