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경쟁 내몰린 대리기사…업체만 배불러

생존 경쟁 내몰린 대리기사…업체만 배불러

기사승인 2009-04-14 17:29:03


[쿠키 사회] 13일 오후 10시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2번 출구 지하. 휴대용정보단말기(PDA)를 살피던 대리 운전기사 이모(55)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PDA에 ‘강남역→상계동 1만2000원’이라는 ‘대리콜(고객 호출)’이 떴기 때문. 이씨는 “이런 게 바로 똥콜(초저가 콜을 일컫는 은어)”이라며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이렇게 싼 값에 올리면 남는 돈이 없다”고 허탈해 했다. 이씨는 “예전에는 강남에서 수원을 가면 4만원을 받았는데 요새는 2만5000원”이라며 “대리기사가 하도 많아 요금은 떨어지고 경쟁은 치열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2년6개월째 대리운전을 하고 있는 이씨는 명문 사립대 출신으로 1급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했다. 퇴직 후 주식에 3억원을 투자했으나 주가 폭락으로 2억원 넘게 날렸다. 생활비라도 벌기 위해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하루 12시간 일하지만 업체 수수료, 보험료, 콜 연결 프로그램 사용비 등을 떼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하루 평균 5만원 남짓이다.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이씨는 수수료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수수료를 20%나 떼는 업체들이 요즘에는 초저가 콜을 띄운다”며 “업체가 폭리를 취하면서 대리기사만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경기 불황으로 대리기사 자리에 구직자들이 몰리는 반면 대리운전 이용은 줄고 있다. 강남역에서 만난 대리기사들은 “지난해 말에는 하루 7∼8건을 대리운전을 했으나 최근에는 4∼5건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승객이 줄고 기사는 늘면서 업체들의 저가 출혈 경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업체의 저가 경쟁에 대리기사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를 수 밖에 없다. 일부 업체는 기사들에게 PDA를 턱없이 높은 가격에 판매한다. 회원수가 3만명이 넘는 대리기사 인터넷 커뮤니티 ‘밤이슬을 맞으며’에는 업체의 부당 영업을 성토하는 대리기사의 목소리가 줄을 잇는다. ‘수수료 20%는 너무하다’ ‘경기도 수원, 인천에서는 일부 업체가 수수료를 건당 25%로 올렸다’ 등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한 대리기사는 “이동비 등을 감안할 때 수수료가 15% 수준이어야 수지가 맞다”며 “높은 수수료에 콜비까지 떨어지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대리업체들은 수수료가 시장 원리에 따른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대리기사 1000여명을 보유한 한 중견 대리업체는 “수수료는 관행적으로 20%를 유지했다”며 “수수료는 콜 센터 운영비, 인건비, 광고비에 쓰인다”고 말했다.

대리기사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집단 행동도 시작됐다. 지난해 12월 광주에서는 대리기사들이 협회를 구성해 파업을 했다. 그러나 대리기사 전체 이익을 대표하는 협회나 노조를 설립하기는 쉽지 않다. 같은 업체에 속했어도 기사들간 유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2년 전 ‘수도권대리운전자연합’을 조직했던 사공표(48)씨는 “전국 10만명이 넘는 대리 기사 중 조직에 소속된 기사는 수천명에 불과하다”며 “인터넷 커뮤니티나 지역별로 활동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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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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