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는 ‘가수’인가, ‘예능인’인가…‘일밤’ 졸속기획의 희생양 될 수도

소녀시대는 ‘가수’인가, ‘예능인’인가…‘일밤’ 졸속기획의 희생양 될 수도

기사승인 2009-04-15 16:23:01


[쿠키 연예] 사상 최악의 부진을 겪고 있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가 최고 인기그룹 소녀시대에 SOS를 요청했다.

15일 MBC와 SM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소녀시대는 ‘일밤’의 파일럿 코너를 맡아 MC로 나선다. 소녀시대 멤버들이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구체적인 콘셉트와 타이틀은 아직 미정이다. 첫 녹화는 다음 주에 이뤄진다. 시청자 반응이 좋을 경우 정규 편성 여부가 결정된다.

△만신창이 일밤, 체면도 버렸다=이번 ‘일밤’의 결정은 단순한 파격을 넘어선다. 그동안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 아이돌 그룹이 등장한 적은 많았지만, 그룹 멤버 전원이 MC로 나선 적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지난 2000년 ‘목표달성 토요일-god의 육아일기’의 god도 MC 보다는 패널 역할에 가까웠다.

더구나 소녀시대는 지난 2007년 8월 데뷔한 고작 2년차 그룹이다. 문제는 고작 2년차 그룹이 사회적 신드롬을 만들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월 발표한 ‘Gee’는 10만장 넘는 판매고를 누렸고, KBS ‘뮤직뱅크’ 9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벨소리와 통화 연결음, 싸이월드 미니홈피 배경음악은 150만건이 넘었다. ‘Gee’ 한 곡만으로 벌어들인 예상 매출액도 무려 40억 원을 넘는다. 유치한 그룹 이름이 현실이 됐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지금은 소녀시대가 대세다.

‘일밤’이 데뷔 2년차의 아이돌 그룹을 MC로 선택한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시청률을 끌어올려야 한다. SBS ‘일요일이 좋다-패밀리가 떴다’는 대본 논란으로 인해 ‘시트콤이 떴다’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지만 30주 연속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릴 정도로 일요일 예능의 최강자다. KBS ‘해피 선데이-1박 2일’은 시청률이 다소 하락하긴 했지만 여전히 잘 나간다.

반면, ‘일밤’은 그야말로 만신창이다. 시청률조사기관 TNS미디어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2일 방송된 ‘일밤’은 ‘대망’이 3.4%, ‘우리 결혼했어요’가 8.4%를 기록했다. ‘대망’은 말 그대로 크게 망하고 있고, ‘우리 결혼했어요’는 이혼을 준비해야 할 상황이다. 만약 ‘일밤’이 MBC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폐지 수순을 밟을 정도의 위기다.

‘패밀리가 떴다’와 ‘1박 2일’이 ‘골드미스가 간다’와 ‘남자의 자격’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일밤’은 애초부터 교체카드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투입 즉시 시청률 반전을 꾀할 히든카드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소녀시대는 ‘일밤’의 히든카드가 될 수 있을까. 적어도 시청률은 올라갈 확률이 높다. 소녀시대가 10대와 20대, 30대 이상 남성 팬들을 비롯한 엄청난 팬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녀시대의 팬들은 어떤 포맷과 콘셉트를 하는 것을 떠나 소녀시대가 나오는 게 중요하다. 일단 브라운관 앞에 앉을 확률이 높다.


재미있는 사실은 MBC 예능국이 ‘일밤’의 시청률 부진을 극복하고자 SM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소녀시대에게 손을 내민 점이다.

MBC 예능국은 지난 2007년 11월 슈퍼주니어의 강인이 ‘일밤’에 MC와 패널로 출연하고 있는 상황에서 SBS가 ‘일요일이 좋다-인체탐험대’에 슈퍼주니어 멤버 전원을 기용하자, ‘일밤’에서 강인을 하차시킨 바 있다. 강인은 ‘쇼! 음악중심’ MC에서도 물러나야만 했다. 이후 MBC 예능국과 SM은 멀고도 가까운 사이가 됐다. SM 소속 가수들은 2007년 연말 행사는 물론, 지난해 10월까지 1년 가까이 MBC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았다.

방송가 한 관계자는 “소녀시대의 ‘일밤’ 출연은 MBC 예능국이 체면을 버리고 시청률 SOS 요청을 한 셈”이라며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청률은 미지수다. TV 시청 충성도가 높은 중장년층은 이미 ‘패밀리가 떴다’와 ‘1박 2일’이 선점하고 있다. 소녀시대 팬들이 주로 30대 이하인 것을 감안하면 불법 다운로드로 볼 확률이 더 높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가수? 예능인?=일단 ‘일밤’은 소녀시대를 새 코너 MC로 기용하는 것에 대해 별로 손해를 볼 것이 없다. 어차피 현재 ‘일밤’은 더 떨어질 시청률도 없다. ‘패밀리가 떴다’와 ‘1박 2일’을 따라가기 위해선 무슨 실험적인 시도라도 해야 할 판이다. 소녀시대가 대박을 못 터뜨려도 중박 이상만 되면 대성공이다.

하지만 소녀시대는 전혀 다른 입장이다. ‘Gee’의 폭발적인 인기로 라이벌 그룹 원더걸스를 제쳤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와중에 ‘일밤’ 출연은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아직 소녀시대가 MC로 참여하는 코너의 명확한 콘셉트나 기획의도도 없다. 졸속기획이라는 비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물론 ‘god의 육아일기’처럼 소녀시대의 인지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국민 그룹 내지는 최고의 아이돌 그룹 반열에 올라가기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다. ‘일밤’은 무너지고 있긴 하지만, 결코 MBC가 포기할 수 없는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다. 소녀시대에게도 한 번 더 도약을 꿈꿀 수 있는 기회다.

문제는 소녀시대가 ‘일밤’에 출연해 시청률 구세주가 되더라도 가수로서의 능력은 반감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일밤’ 새 코너가 어느 정도 시청률이 나오게 되면 파일럿은 커녕, 곧바로 정규 편성이 될 분위기다. 이럴 경우 적어도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소녀시대가 ‘일밤’에 고정출연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본 직업인 가수에 열중할 시간이 부족해진다. 만약 새 코너가 또 다시 시청률 부진에 허덕인다면 그 원인은 고스란히 소녀시대가 지게 된다. 득에 비해 실이 많을 수 있는 모험인 셈이다.

더구나 소녀시대는 데뷔 이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혹사를 당하고 있다. 말 그대로 과부하가 걸려 있다.

정규 1집 이후 그룹 활동은 잠시 중단됐지만, 소녀시대는 계속해서 무쇠체력을 과시했다. ‘Gee’로 대박을 터뜨리자, 소녀시대가 등장하지 않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이 손에 꼽을 정도로 소녀시대는 방송국을 누볐다.

본격 연기자 겸업을 선언한 윤아는 더욱 심각하다. 드라마 ‘9회말 2아웃’ 이후 재충전할 시간도 없이 ‘너는 내 운명’과 그룹 활동을 병행했다. ‘신데렐라맨’도 이제 곧 시작된다. 디지털 싱글 ‘오빠 나빠’를 발표한 제시카와 티파니, 서현도 마찬가지다. 수영과 유리도 ‘Gee’ 인기 열풍을 등에 업고 예능계에 진출했다.

한 마디로 그저 말만 활동중단일 뿐 소녀시대는 데뷔 이후 제대로 된 휴식기 자체를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시대는 ‘일밤’ 출연을 강행했다. 다음 앨범을 위한 활동중단으로 기대했던 팬들 입장에선 분통이 터질 일이다. 직업이 가수인지, 예능인인지 헷갈린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소녀시대는 예쁜 외모와 귀여운 모습 못지 않게 앨범 자체가 큰 사랑을 받았다. 단순한 팬덤의 사랑으로 보기엔 소녀시대가 발표한 곡들은 연속 히트를 넘어 일정 수준 이상의 음악적인 퀄리티가 있었다. 주류 대중가요평론가 집단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현재 소녀시대의 활동은 가수가 기본적으로 밟아야 할 코스와는 전혀 다르다. 다음 앨범을 위한 그야말로 재충전 성격의 휴식기가 아예 없고, 자작곡 내지는 기본적인 음악적 발전을 위한 시간이 전혀 없다.

아이돌 그룹은 이미지 소비가 과하면 끝내 해체되고 만다. 소속사 입장에서 상업적인 능력이 소진됐다는 평가가 나오면 즉시 해체된다. 특히 여성 아이돌 그룹은 그동안 귀여운 콘셉트에서 섹시 콘셉트로 이동한 뒤 사라진 그룹이 한 두 팀이 아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가수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다. 동방신기는 아이돌 그룹으로 출발했지만 해체 위기가 없을 정도로 성장 일변도로 나아가고 있다. 이미 일본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고 작사와 작곡 등 가수로서 기본적인 역량도 밟아가고 있다. 가수 외 활동이 적다보니 보컬의 기량 저하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소녀시대는 정반대다. 분명히 가수로서 성장 잠재력이 있는데도 가수 외 활동이 너무 많다. 태연과 서현이 자작곡을 배울 수도 있고, 제시카와 티파니가 싱글 활동을 준비할 수도 있을 시간에 필요 이상의 혹사를 당하고 있다. 윤아는 또래 아이돌 출신 연기자에 비해 기본적인 연기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공을 다질 시간이 현저히 부족하다.

소녀시대 팬덤도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저 자주 TV에 나온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팬의 자세에서 소녀시대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 꾸준한 의견을 공유해야 한다. 아직 확실한 콘셉트도 없는 졸속기획인 ‘일밤’ 출연을 반가워 하기에는 소녀시대라는 가수의 미래가 훨씬 창창하기 때문이다.

소녀시대가 MC로 나설 ‘일밤’ 새 코너가 잘 되도 문제, 안 되도 문제란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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