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노 전 대통령이 금품수수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를 확보해 제시한다면 특정한 청탁이나 명시적 대가성이 없더라도 포괄적 뇌물죄로 처벌 가능하다. 대통령은 국정수행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실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는 범죄 성립과 상관이 없다. 1997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포괄적 뇌물죄로 처벌받았다.
법원은 뇌물죄 관련 공무원의 직무 범위를 폭넓게 인정한다. 교통과 소속 경찰관이 직무관련성이 떨어지는 도박장 개설을 눈 감아주고 돈을 받았더라도 뇌물죄가 성립된다. 대법원 판례는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된 사람에게 돈을 무이자로 빌린 경우도 금융상 이익으로 간주해 뇌물로 인정한다.
반면 증거는 없고 노 전 대통령이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는 심증만 있는 경우 판단이 쉽지 않다. 법원은 형사 재판에서 엄격한 증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심증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경우만 유죄의 증거로 받아들인다. 이 때문에 돈을 줬다는 사람의 진술이 확보됐다는 것만으로 유죄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수사가 부진할 경우 검찰은 노 전 대통령 대신 권 여사를 처벌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뇌물이나 제3자 뇌물 또는 알선수재 등의 혐의 중 어느 것을 적용할 지에 결정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법리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먼저 영부인을 공무원으로 볼지 아니면 사인(私人)으로 볼지 판단해야 한다. 영부인을 공무원에 준하는 자리로 보면 뇌물혐의를 적용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박 회장이 건넨 돈과 영부인의 직무관련성이 입증돼야 한다.
노 전 대통령 부부가 각각 독립된 경제 주체라는 가정 하에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해달라며 권 여사에게 돈을 준 것이라면 권 여사에게 제3자 뇌물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기존 판례에도 공무원인 아내에게 전해달라는 돈을 받은 남편이 제3자 뇌물취득으로 처벌받은 사례가 있다. 알선수재혐의는 공무원이 아닌 일반인에게 적용되는 조항이므로 이 때도 영부인의 지위 해석 여부가 관건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양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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