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우편이 뭐예요?”…탈북만큼 힘든 탈북자들의 취업 전쟁

“전자우편이 뭐예요?”…탈북만큼 힘든 탈북자들의 취업 전쟁

기사승인 2009-05-14 20:07:00
"
[쿠키 사회] ‘내가 사장이라면 어떤 이력서를 뽑을까요?’

12일 오전 10시 서울 공릉동 공릉종합사회복지관의 조그만 취업 준비반 교실. 참석자들이 자못 진지하다. 여느 취업 스터디와 달리 앳된 얼굴의 20대 여성이 머리가 희끗한 70대 할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참석자 9명은 모두 최근 입국한 북한이탈주민(탈북자)다. 통일부가 지난 3월 개설한 서울북부하나센터의 ‘새터민 취업지원 프로그램’에 참석한 이들은 취업 전쟁에 갓 발을 내딛은 ‘구직 새내기’이기도 하다.

진행을 맡은 방현종(31) 복지사는 “누구의 이력서가 제일 훌륭한지 발표하자”며 상호 평가를 독려했다. 망설이던 참석자들은 이내 상대방에게 깐깐한 평가를 내린다. “경비원을 하기에는 경력이 화려해 일찍 퇴사할 것 같다” “경력을 보니 한 곳에서 오랫동안 일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옮긴 것 같다”는 난상토론이 오갔다.

이어 이력서 쓰기 강의가 시작됐다. 방 복지사는 “이메일 주소를 써야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으로 보인다” “글자는 흘려쓰지 말고 정자로 써야 한다”며 바로 잡아준다. 강의을 듣던 한 여학생은 “전자우편이 뭐예요?”라고 물었다가 “전자우편이 바로 이메일”이라는 대답이 돌아오자 쑥스럽게 웃었다. 이들에게는 남한에서 흔히 쓰는 단어도 아직 낯설기만 하다

참석자들은 강의가 끝난 뒤 서울북부 종합고용지원센터에서 구직인 등록을 했다. 한 장짜리 등록신청서를 쓰는 데도 모두 진땀을 흘렸다. 박순애(24·여·가명)씨가 희망 직종에 ‘회계사’라고 쓰자, 방 복지사는 “회계사는 시험을 봐야 될 수 있어요. 회계 업무라고 적어요”라고 귀띔한다. 지방에 사는 한 탈북자는 희망 근무 지역을 ‘서울’이라고 적은 뒤 “나도 서울에서 살고 싶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희망 월급은 대부분 130만원 안팎이었다.

참가자들은 3주간 직장 예절, 남한 직업의 세계 등에 대해 배웠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국철(39·가명)씨는 북한에서 수의사였지만 이제는 전기 기술자를 꿈꾸고 있다. 지난해 12월 입국한 오지화(45·여·가명)씨는 “중국에서 10년 동안 음식점에서 일했다”며 “양식과 한식을 모두 배워 최고의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희망 직종은 모두 달랐지만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싶은 소망은 같았다.

지난 1월 기준 입국한 탈북자는 1만5340명. ‘귀순 용사’로 대우받던 과거와는 달리 탈북자 대다수는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북한인권정보센터가 표본 추출한 탈북자 361명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취업한 탈북자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93만7000원이었다.

통일부는 정착지원 시설인 하나원의 교육만으로는 사회 적응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지역 맞춤형 지원시설인 하나센터를 개설했다. 서울, 경기도, 대구에서 시범 운영 중인 하나센터는 내년부터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뭔데 그래◀ ‘원칙인가, 몽니인가’ 박근혜 전 대표의 원칙론 어떻게 보십니까?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임성수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