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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던 7일 오전. 서울 신정7동 갈산초교 운동장의 희뿌연 모래바람 사이로 우렁찬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요일마다 이곳은 늙음을 거부하는 '노노(No 老) 할아버지들'의 야구장이 된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이 무색하게 야구를 향한 열정은 뜨거웠다.
이날은 야구단원 30여명이 청·백팀으로 나눠 자체 평가전을 벌였다. 할아버지들은 등번호 대신 'Silver Baseball Club, since 1997(노인 야구클럽, 1997년부터)'라고 적힌 노란색과 파란색 상의를 입고 감독과 코치의 사인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눈빛은 여느 프로선수들과 다르지 않았다. 실수를 하면 가차없이 질책이 나왔고 멋진 수비 장면에는 "나이스 플레이"라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최고 볼거리는 최고령 장기원(80) 투수가 던지는 강속구. 야구단원들은 "장 할아버지의 공은 시속 120㎞가 넘는다"고 전했다. 물론 사실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키가 160㎝도 안되는 장 할아버지가 던지는 공은 어김없이 힘찬 소리를 내며 포수 미트로 빨려들어갔다. 젊은이 못지 않은 '파워'였다.
장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 야구를 시작했지만 1952년 한국전쟁에 징집돼 그만뒀다. 그는 지금 노노야구단의 에이스다. 장 할아버지는 "야구를 하다가 다치기도 하고, 힘은 들지만 좋아서 하는 운동이라 어쩔 수 없다"며 크게 웃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2시간쯤. 앞선 백팀을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자 수비 실수를 한 3루수에게 "그걸 잡았어야지"라는 질책이 날아들었다. 3루수를 맡은 김종석(63)씨는 "아무래도 걸음이 느려…"라며 아쉬워했다.
4시간 동안 진행된 경기는 13대 3으로 백팀이 이겼다. 하지만 승패는 상관없었다. 너도 나도 "수고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막내 김원규(52)씨는 "경기 뒤에는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며 "하지만 야구의 매력은 공이 제대로 맞았을 때의 손맛, 치고 달리고 받는 삼박자의 희열"이라고 말했다.
노노야구단은 97년 나이가 많다고 일반 사회인 야구단에서 받아주지 않는 할아버지들이 알음알음 모여 창단했다. 모두 야구에 미쳐 죽고 못 사는 사람들이었다. 평균 연령 63세. 국내 유일의 실버 야구단이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한때는 수도권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문전성시도 이뤘다. 세상을 떠나거나 지병으로 몸져 눕는 동료를 지켜봐야 하는 아픔도 있었다. 후원금 사정이 빠듯해 한 달에 2만원씩 갹출해 야구단을 운영하다 보니 재정적 어려움도 뒤따랐다.
노노야구단은 연간 10번 정도 다른 사회인 야구단과 경기를 갖는다. 최근 개그맨 김현철씨가 소속된 연예인 야구단 '외인구단'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맛보기도 했다. 올해만 4번 싸워 3번 이겼다. 박동석(62) 감독은 "정말 순수하게 야구가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라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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