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게 아니라 배웁니다” 야학 교사 어르신 유경준씨

“가르치는 게 아니라 배웁니다” 야학 교사 어르신 유경준씨

기사승인 2009-06-23 17:28:00


[쿠키 사회] 초로의 어르신 유경준(67·울산시 우정동·사진)씨는 매일 울산시민학교에서 동네 주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비정규 문해교육기관인 울산시민학교는 쉬운 말로 하면 ‘야학’이다. 이곳에서 한글교사로 활동하는 유씨는 2004년 8월 울산초교 교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40년 넘게 교직에서 보냈다. 퇴직 후 잠깐 쉬고 있을 때 아내로부터 “울산 어디엔가 노인들에게 한글 가르치는 야학이 있다고 하더라”는 정보를 듣고 귀가 번쩍 띄었다. 이렇게 한글교사가 된 유씨의 공부방을 찾는 노인들이 한글을 배우는 이유는 “손자, 손녀가 원할 때 유창하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싶어서” “혼자 은행을 찾아가 입출금 전표를 직접 작성해 보고 싶어서” 등등 가지가지다.

오랜 교직생활을 했음에도 ‘노인 학생’을 상대하는 일은 꽤 생소했지만 동년배여서 통하는 점이 많은 것은 장점이었다. 유씨가 베테랑 한글교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구사회복지관 등에서도 야학 교사로 봉사해 달라는 요청이 와 가르쳐야 할 ‘까막눈’ 노인학생들이 더 늘었다.

“노인들이지만 배움의 열정과 열기는 기말고사를 코 앞에 둔 중고생들을 능가한다”고 말하는 유씨를 거쳐간 어른 학생들이 벌써 수백여 명에 이른다. 김동영 울산시민학교 교장은 “요즘은 1주일 내내 보따리를 싸들고 다니시면서 강의하실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분”이라고 유씨를 치켜세웠다.

남을 가르치는 일은 40년 경력의 ‘달인’이지만 정규 교육과는 성격이 사뭇 다른 ‘성인 비문해자’ 교수법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유씨는 최근 울산시 중구와 전국야학협의회가 3주간 진행한 문해교육강사 연수에도 참여했다.

유씨는 “야학에서 한글을 가르치면서 이 일이 단순히 ‘문맹 퇴치’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교감’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느끼게 됐다”며 “노인학생들이라 실제로 배워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일이 이 분들과 내 삶에 던져준 삶의 동기부여는 너무나 귀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 했던가. 그의 부인도
남구사회복지관에서 한글을 가르치며 보람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유씨는 “40년 넘게 나라의 녹을 먹어왔는데 뭔가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지만 내가 배우는 것이 더 많다”며 “문자를 깨우친 사람들이 고맙다는 감사의 마음을 전해올 때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글·사진 울산=국민일보 쿠키뉴스 조원일 기자
wc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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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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